2024년 새해 초부터 IPO(기업공개) 시장이 예사롭지 않다. 수요예측에 나선 5개 기업이 하나같이 모두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으로 정했다. 기관들의 공모주 확보 경쟁이 치열한 것인데, 업계에선 발행사 매력을 정밀하게 따져 나온 결과로 보지 않는다.


작년 12월 이후로 무조건 고수익이 나는 사례만 이어지다 보니 올 초 기관들 사이서도 '묻지마 투자' 붐이 조성되고 있다. 분위기에 편승한 기업은 중기적으론 투자자에게 손해를 안겨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다.


이에 일각에선 주관사 성향을 주시하고 있다. 시장(기관)이 가격형성기능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할 정도로 과열됐을 땐 주관사라도 제동을 걸 수 있는지 봐야 한다.


작년 주관업무 상위 5개사 가운데 공모가를 높여 잡은 횟수 비중이 가장 큰 주관사는 삼성증권과 KB증권이었다. 반대로 작년 주관업무 1위였던 미래에셋증권이 사례가 가장 적었다.


◇ 삼성‧KB증권 6건 중 5건 상초


작년 대표주관 실적 1위는 미래에셋증권(실적 9534억원), 2위 한국투자증권(5057억원), 3위 NH투자증권(4411억원), 4위는 삼성증권(3579억원) 5위 KB증권(2783억원)이다. 이 중 4~5위인 삼성증권과 KB증권이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보다 높여 잡은 사례(상단초과, 이하 상초) 비중이 가장 높았다.



양사는 스팩(SPAC)과 리츠(REITs)를 제외하고 지난해 총 6건의 IPO를 대표주관했는데 5건이 상초였다. 전체 건수 대비 상초 비중은 83.3%다. 나머지 1건은 모두 수요예측 경쟁률이 100대 1에도 못미치는 등 흥행이 저조했던 케이스다. 가능한 상황에선 100% 상초를 결정한 셈이다.


이어 NH투자증권이 전체 10건 중 6건(60%), 한국투자증권이 11건 중 5건(45.5%)이었다. 작년 IPO를 가장 많이 수행한 미래에셋증권은 되레 사례가 많지 않았다. 전체 15건 중 4건(26.7%)에 그쳤다.


희망밴드 대비 공모가를 얼마나 높였는지(상승률)도 봐야 한다. 질적 성향으로 볼 수 있다. 상승률 1위는 한국투자증권으로 상초 5건의 평균상승률이 14.5%였다. 2위는 삼성증권(13.5%), 3위 NH투자증권(13.3%), 4위 미래에셋증권(12.4%), 5위는 KB증권(12.1%) 이었다.


결과적으로 삼성증권이 건수비중(83.3%, 1위)과 상승률(13.5%, 2위)에서 모두 상위에 랭크했다. 삼성증권은 5개사 상초 딜 가운데 단일건으로 상승률이 가장 높은 딜 두 개를 수행하기도 했다. 작년 3월 상장한 금양그린파워와 7월 상장한 센서뷰가 각각 상승률이 25%로 최고치다.


삼성증권은 올 1월 5개 상초딜 가운데 상승률이 27%로 가장 높은 이닉스를 대표주관하기도 했다. 희망밴드 상단이 1만1000원인데 공모가를 1만4000원으로 확정했다. 같은 달 나머지딜 상승률은 HB인베스트먼트(NH투자증권) 21.4%, 포스뱅크(하나증권)는 20%, 현대힘스(미래에셋증권) 15.9%, 우진엔텍(KB증권)이 9.2%다.


미래에셋증권은 작년 건수비중(20%, 5위)과 평균상승률(12.4% 4위)에서 모두 하위권에 랭크된 주관사다.


◇ 수요예측 결과 근거, 편승 사례가 문제


물론 삼성증권과 KB증권이 무리하게 상초 결정을 내리고 있는 것은 아니다. 대다수 상초를 수용해도 될 만한 기관수요예측 결과가 있기에 내린 판단이다.


삼성증권이 대표주관한 금양그린파워는 수요예측 경쟁률이 1600대 1에 달했고, 가격도 공모가 희망밴드 상단(8000원)을 초과한 구간에 94.9%가 베팅됐다. 기관 대다수가 상초 가격을 마다하지 않았다.



KB증권이 대표주관한 한싹도 기관수요예측 경쟁률이 840대 1수준이었고, 희망밴드 상단(1만1000원)을 초과한 구간에 93%가 베팅됐다. 나머지 삼성증권과 KB증권 상초딜들도 상단 초과 구간 베팅비중이 90% 내외다.


편승 여부를 주관사가 발라내지 못할 때가 문제다. 경쟁이 치열한 딜들인 만큼 상장 이후 시간이 지나야 편승 여부가 드러나는데 KB증권은 사례 하나가 나왔다. 작년 11월 상장한 쏘닉스는 공모가(7500원)를 밴드상단(7000원)보다 7.1% 높은 가격으로 정했다. 그런데 상장 2개월여만인 이달 22일 종가는 4720원이다. 공모가 대비 37% 낮아져있다. 현재 가격(4720원)이 희망밴드(5000원) 하단에도 못 미친다.



삼성증권 상초 딜들은 다행히 현재 주가가 공모가보다 낮아진 사례는 없다. 다만 수익률 측면에서 부족한 딜들이 있다. 공모주는 이론적으로 적정가치보다 할인된 주식이다. 상당 당시 책정한 주당 평가액(적정 가치)에 할인율을 적용한 것이 공모가 희망밴드다. 통상 20~30% 수준으로 할인을 한다. 투자자들은 할인율만큼의 수익률을 기대하고 베팅하는 셈이다.


삼성증권은 상초 6건 중 2건이 현재 수익률이 10%대다. 공모가를 높이면서 기대수익률이 일반적 수준(20~30%)보다 낮아졌다. 공모가를 밴드상단 대비 25% 높인 금양그린파워는 이달 22일 종가가 1만1070원으로 공모가(1만원)보다 10.7% 높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금양그린파워가 최초 주당 평가액에 적용한 할인율은 33.41~44.23%였다.


물론 10개월 전인 상장 초기엔 주가가 공모가 대비 크게 올랐기에 단기처분을 한 공모주주들은 수익을 낼 수 있었다. 다만 이후로 누군가는 그만큼 손해를 보고 있다.


금양그린파워 최근 1년 주가(자료:네이버금융)



작년 10월 상장한 레뷰코퍼레이션은 이달 22일 종가가 1만7020원으로 공모가(1만5000원)보다 13.5% 올라있다. 레뷰코퍼레이션이 주당 평가액에 최초 적용한 할인율은 22.43~32.42%였다.


비슷한 결과를 받고도 무리하지 않은 다른 주관 사례도 있다. 한국투자증권이 주관한 나노팀은 수요예측 경쟁률이 1723대 1에 달했고, 밴드상단 초과 구간 베팅비중도 87.7%였다. 하지만 공모가는 희망밴드 상단(1만3000원)으로 정했다.


작년 최대 빅딜이었던 두산로보틱스도 무리하지 않은 축에 속한다. 수요예측 경쟁률이 272대1이었는데 허수청약 금지 이후 딜이었던데다 딜사이즈(4212억원)를 감안하면 상당히 흥행한 결과로 평가된다. 가격 베팅구간도 밴드상단 초과 구간에 57.2%가 몰렸다. 하지만 공모가는 밴드상단(2만6000원)에 만족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수요예측 당시 가격분포도에 근거해 상단초과를 결정하는 것이지만 시장이 과열조짐을 보일 땐 진정시켜주는 것도 주관사의 역할이자 능력"이라며 "과거 사례를 참고해 스스로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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