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지마 투자에 가깝다. 기관 의무보유확약(이하 기관확약) 비중이 10%대 내외에 그친다는 것은 기관도 분위기(묻지마)에 편승했다는 의미다. 언젠가 손해를 볼 시기가 올 수 있다."


한 기관투자가가 바라본 2024년 새해 초 IPO(기업공개) 시장 분위기다. 1월 중순 기관수요예측에 나선 4개사가 하나 같이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으로 정했다. 그만큼 공모주 확보를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는 의미다. 반대로 기관 의무보유확약율은 10% 내외에 그친다. 이른 바 기관들이 '단타'를 노리고 있다.


작년 말 케이엔에스가 시장 과열 기폭제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상장 첫날 종가가 공모가의 4배에 달했다. 이후론 하나같이 비슷한 현상이 재현되고 있다. 발행사 매력도에 근거하지 않은 비이성적 투자라는 것이 문제다. 반대 케이스가 하나라도 나올 경우 분위기는 급속도로 냉각될 수 있다.


업계에선 최근 동종딜 실패 선례가 있는 노브랜드를 요주의 IPO로 꼽는다.


◇ HB인베·현대힘스·우진엠텍·포스뱅크 4인방 '상초'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HB인베스트먼트와 현대힘스, 우진엔텍, 포스뱅크 등 4개사는 최근 진행한 수요예측결과를 반영해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으로 정했다. HB인베스트먼트는 밴드 상단(2800원)보다 21.4% 높은 3400원으로 가장 많이 올렸다. 이어 포스뱅크(20%), 현대힘스(15.9%), 우진엔텍(8.2%) 순으로 밴드상단 대비 공모가를 높였다.



표면적으로 보면 크게 흥행한 딜이다. 수요예측 경쟁률도 작년 말보다 평균적으로 높다. 작년말엔 딜별로 편차가 컸다. 300~900대 1 수준으로 넓게 분포했고, 75대 1(에코아이)이나 136대 1(에이텀) 그친딜도 있었다.


올 들어선 모두 600대1이 넘는다. 우진엔텍은 1263대1에 달했다. 그리고 기관들은 희망가격까지 밴드 상단 이상으로 베팅했다. 물량확보 경쟁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치열했다는 의미다.


그런데 기관확약은 반대양상이다. 포스뱅크는 전체 신청 수량의 6.2%, HB인베스트먼트는 7.7%가 확약물량이다. 현대힘스(12%)와 우진엔텍(17%)은 그나마 높다. 기관확약 역시 딜의 흥행을 가늠하는 척도 중 하나다. 기관은 일정기간(15일~6개월) 동안 주식을 팔지 않기로 약속을 할 경우 물량을 더 많이 배정받는다.


발행사의 펀더멘털이나 기업가치(밸류)가 매력적이라면 중장기적으로 보유해도 수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에, 이 경우 기관은 확약으로 최대한 많은 물량을 확보한다. 작년 9월 상장한 로봇대장주 두산로보틱스가 기관확약 비중이 51.6%에 달했다.


올 초 4개사는 흥행 이면에 '단타'에 대한 열망이 숨겨진 셈이다.


◇ 케이엔에스가 기폭제, 첫날 수익률 300%


작년 말 케이엔에스를 기점으로 발행사들이 하나 같이 상장 직후 주가가 폭등한 것에 기인한 현상이라는 평가다. 케이엔에스는 작년 12월 6일 상장했는데 이날 종가가 9만2000원으로 공모가(2만3000원)의 4배로 치솟았다. 이어 12월 12일 상장한 LS머트리얼즈 역시 첫날 종가(2만4000원)가 공모가(6000원)의 4배에 달했다.


상상 이상의 수익률을 맞본 투자자들의 열기는 특례상장을 한 블루엠텍으로까지 옮겨붙었다. 당시는 특례상장을 했던 파두가 실적저하로 주가가 급락해 논란이 됐던 시기다. 하지만 블루엠텍 역시 상장일(12월 13일) 종가(5만1000원)가 공모가(1만9000원)보다 168% 올랐다.


그리고 작년 마지막 딜인 DS단석이 상장일(12월22일) 종가(40만원)가 공모가(10만원) 대비 4배로 오르며 대미를 장식했다. 발행사에 특별한 하자가 없으면 무조건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올만한 결과물들이다.


케이엔에스 이전엔 4배 정도의 수익률이 연달아 나오는 분위기가 아니었다. 옥석가리기가 있었다. 11월 말 상장한 한선엔지니어링과 그린리소스, 에이에스텍 등 정도만 첫 날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150~200% 수준이었다.



기관들이 올 들어 단타에 집중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기관확약을 걸고 좀더 많은 물량을 확보해 3~6개월 뒤 수익을 내는 것보다, 확약을 걸지 않고 소규모 물량으로 단타를 하는 것이 더 높은 수익을 낼 수 있다. 더불어 장기보유에 따른 변동성도 제거된다. 앞선 관계자는 "단기 수익률이 중기보다 높을 가능성이 높으니 확약을 걸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열 현상은 당연히 좋지 않다. 주가는 발행사의 펀더멘털과 업황을 따라 제자리를 찾아가게 마련이다. 분위기에 편승했다가 누군가는 자칫 큰 손해를 입을 가능성이 크다. 블루엠텍의 경우 이달 16일 종가(1만9900원)가 공모가(1만9000원)에 근접한 수준으로 낮아졌다.


◇ 반대 사례 시 시장 급냉, 노브랜드 밸류 주목


향후 IPO에서 수익률이 전 만하지 못하거나 손해를 보는 사례가 나올 경우 전체 시장이 급격히 얼어붙을 가능성이 있다. 이에 업계에서 주목하는 딜은 노브랜드다. 글로벌 의류 OEM(제조자개발생산)인데 동종딜이 최근 흥행에 실패한 선례가 있다.


앞서 등산용품 ODM사인 동인기연은 지난해 11월 기관수요예측을 했는데 경쟁률이 26대 1에 그쳤다. 이에 공모가도 희망밴드 하단(3만3000원)보다도 낮은 3만원으로 정했다. 창업주의 구주매출과 고평가된 밸류(해외경쟁사 피어그룹 포함) 등이 투자를 꺼리게 만든 요인이었다. 동인기연은 이달 16일 종가(2만6400원)도 공모가(3만원)보다 낮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


이에 기관투자자들은 노브랜드 딜이 시장 분위기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본다. 앞선 관계자는 "동인기연 IPO가 멀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노브랜드를 가장 주목하고 있다"며 "시장이 수용할만한 밸류를 제시할 지가 최대 관건"이라고 말했다.


노브랜드는 지난해 12월 14일 한국거래소로부터 상장예비심사 승인을 받았다. 하지만 한 달여 지난 현재까지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있다. 업계에선 노브랜드가 동인기연을 의식해 시장 분위기를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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