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기업공개(IPO) 시장은 다사다난했다. 올 첫 코스피 주자였던 강관제조사 넥스틸서부터 '대어'였던 반도체 팹리스 파두까지 공모주주들에게 심각한 손실을 입혔다. 공모 당시만해도 '펀더멘털'에 대한 자신감을 내비추며 고평가된 '몸값'을 합리화했다.


그런데 양사 모두 상장 후 처음으로 공개한 분기실적이 처참했다. 넥스틸은 영업이익률이 올 상반기까지 30%대에 달했는데 올 3분기는 적자전환했다. 파두는 올 3분기 영업이익도 아닌 매출이 3억원에 그쳤다. 당연히 주가도 수직낙하했다. 일각에선 '사기 상장'이라는 표현도 서슴지 않고 있다. 금융당국도 보다 못해 규제 강화에 나섰다. 최근 IPO에 나선 기업들은 월단위 실적까지 공개한 후 공모를 치른다.


공모주 시장도 '냉정함'이 요구되는 시기다. 기업 본연의 경쟁력 확인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마침 펀더멘털 측면에선 의심의 여지가 없는 '대어'가 내년 초 등판한다. 뷰티테크 기업 에이피알이다. 4년간 연평균 매출성장률이 36%에 달하고, 최근 영업이익률은 18%다. 실적으로 무장한 기대주다.


◇ 예심 속전속결 승인, 내년 코스피 1호 '대어'


에이피알은 한국거래소로부터 이달 12일 예비심사(이하 예심) 승인을 받아냈다. 통과 속도가 일사천리였다. 올 9월 22일에 예심을 청구한 지 두 달하고도 보름 만이다. 통상 심사엔 2개월이 소요되는데 올 들어선 4~5개월 이상으로 늘어진 딜이 수두룩하다. 청구 건이 평시보다 많아져 거래소에 과부하가 걸린 데다 '파두' 사태가 겹치며 최근 심사가 까다로워진 탓이다.


반대로 거래소나 금융감독원 입장에선 '기대주'는 하루 빨리 등판시켜야 할 유인도 크다. 파두 사태로 상처난 시장 분위기를 치유해야 하기 때문이다. 에이피알 심사를 속전속결로 끝낸 배경 중 하나로 평가된다.


에이피알은 이달 말이나 내년 1월 초 증권신고서를 제출할 계획인 것으로 파악된다. 공모를 1월 중에 치르는 일정이다. 계획대로라면 내년 1호 코스피 IPO라는 타이틀을 쥘 수 있다. 같은 코스피 시장을 노리고 있는 엔카닷컴은 에이피알과 비슷한 시기 예심(9월27일)을 청구했지만 아직 승인이 안났다.


에이피알이 '기대주'인 이유는 나눠가질 공모주가 풍성한 대어이기 때문이다. 에이피알은 조단위 밸류(기업가치)가 예상되고 있다. 올 3분기까지 순이익이 584억원이고 이를 연환산한 연간순이익 예상치는 778억원이다.


그리고 주요 피어그룹(비교대상 기업군)으로 예상되고 있는 아모레퍼시픽과 LG생활건강은 주가수익비율(PER)이 40~50배다. 멀티플(PER)을 크게 할인해 20배 정도로 잡는다고 해도 예상 밸류가 약 1조5000억원대다.


◇ '반짝' 호실적과 대비, 4년여 입증


파두와 넥스틸 사태로 인한 반대급부가 예상되는 것도 에이피알이 주목받는 이유다. '반짝' 호실적을 내는 기업이 아니라 무려 4년여 간 성정성과 수익성을 함께 입증해왔다. 최소 '실적'에 대한 우려는 내려놓아도 된다.


에이피알은 매출이 2019년 1590억원에서 2020년 2190억원, 2021년 2591억원, 2022년 3977억원으로 매년 늘었다. 3년간(2019~2022년) 연평균 매출증가율이 36.5%다. 올해도 3분기까지 매출(3718억원)이 전년 동기(2696억원)와 비교해 37.9% 증가했다.



수익성 개선을 동반한 성장이다. 영업이익도 2019년 72억원에서 2022년 392억원으로 늘었다. 올해도 3분기까지 영업이익(698억원)이 전년 동기(185억원)와 비교해 277.6% 증가했다. 올 3분기누적 영업이익률은 18.8%다.


가장 최근인 올 3분기만 떼고 보면 고공성장이 현재 진행형임을 알 수 있다. 올 3분기 매출(1219억원)은 전년 동기(953억원)에 비해 28%, 영업이익(219억원)은 전년 동기(126억원) 대비 73.7% 증가했다. 3분기 영업이익률은 17.9%다.


덕분에 올 들어선 화장품 대장주인 아모레퍼시픽에 근접한 이익을 내고 있다. 아모레퍼시픽은 올 3분기까지 연결기준 누적 영업이익이 874억원으로 같은 기간 에이피알(698억원)보다 180억원 많은 수준이다. 3분기만 보면 에이피알(219억원)이 아모레퍼시픽(172억원)보다 더 벌었다.


◇ B2C의 장점, 실적 급등락 없다…미국 매출은 '미래'


더불어 사업모델이 B2B(기업 간 거래)인 파두와 넥스틸과 달리 B2C(기업과 소비자 간 거래)로 일군 성과다. B2B는 호황일 때는 뛰어난 실적을 보이지만 불황기엔 그만큼 충격을 크게 받는다. SSD(Solid State Drive, 하드디스크 대체 고속 보조기억장치)컨트롤러를 만드는 파두는 메모리시장이 꺾이면서 고객사가 발주를 중단해 100억원이 넘던 분기 매출이 일순간에 증발해버렸다.


에이피알은 B2C라 실적 급등락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다. ▲유재석 화장품으로 유명한 코스메틱(화장품) 브랜드 메디큐브(medicube)와 ▲자연주의 화장품 에이프릴스킨(Aprilskin) ▲퍼퓸&라이프스타일 화장품 포맨트(Forment) ▲패션브랜드 널디(Nerdy) ▲건강기능식품 글램디(Glam.D) 등이 주요 브랜드다.


모두 소비재다. 특히 화장품은 소비자들이 한 번 택하면 재구매율이 높은 특징을 지닌다. 피부에 맞는 제품을 지속 사용하기 때문이다. 경쟁이 치열한 시장이지만 우위에 서면 매출이 안정적으로 발생한다.


다만 B2C는 유행에 민감하다는 특징이 있다. 트랜드를 놓치면 도태될 위험이 있다. 그런데 에이피알은 '변화'에 능하다. 최근 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제품은 화장품이 아닌 뷰티 디바이스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다.


메디큐브 에이지알 라인업(사진:홈페이지)



'소수만 누리던 클리닉 서비스를 모두가 누릴 수 있도록'이라는 슬로건으로 2021년 초 내놓은 제품이다. 병원에서 피부시술을 받으면 회당 70만~90만원 정도 거금이 드는 시장상황을 노렸다. 메디큐브 에이지알은 집에서 같은 효과(피부시술)를 볼 수 있도록 만든 디바이스다.


시장 수요를 제대로 적중해 '메가 히트'를 쳤다. 출시 1년 반 만에 무려 1600억원에 달하는 매출을 냈고 출시 후 2년 8개월가량 지난 현재누적 매출은 3000억원에 이른다. 트렌드를 만들어 낸 것으로 평가받는 수준이다.


특히 중장기 '미래'에 대한 기대감도 큰데 에이피알이 내수에만 의존하지 않는 '수출'기업이기 때문이다. 에이지알을 비롯한 브랜드들이 해외서도 먹힌다. 에이피알 수출액은 2020년 952억원에서 2022년 1437억원으로 늘었다. 올 3분기까지 수출액은 1387억원으로 전년동기(1041억원)보다 33.2% 증가했다. 전체 매출에서 수출액이 차지하는 비중이 37%다.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뷰티시장인 미국에서 성과가 나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에이피알 관계자는 "에이지알은 미국과 일본서도 각각 15만대 이상의 누적 판매고를 기록했다"며 "특히 올해 미국 매출은 전년 동기대비 146.2%, 영업이익은 540.9% 늘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