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상태로는 기업공개(IPO)를 해도 제대로 된 평가를 받기 힘들다. 친환경 사업을 확대했지만 건설사 색채를 지울 수준이 아니다. 부실 사업을 솎아내면서 '코어'에 더 집중해야 한다. 장동현 부회장에게 부여된 역할이다"


SK에코플랜트에 거금을 태운 한 재무적투자자(FI)의 이야기다. 2023년 말 SK그룹 사장단 인사를 보고 내린 평가이자 FI로서 앞으로 경영진에 요구할 내용이기도 하다.


이번 인사 키워드는 '세대교체'와 '쇄신'이었다. 장동현 부회장은 칼바람을 피한 유일한 부회장이다. 다른 부회장 3인은 일선에서 물러나 '조언자(고문)' 역할을 하게 됐다. 반면 장 부회장은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로 선임돼 중책을 이어간다.


그의 역할은 명료하다. SK에코플랜트 IPO를 완수하기 위해 고강도 체질개선에 나서는 것.


◇ 박경일 사장 '확장'에 주력


SK그룹은 이달 7일 정기인사를 통해 장 부회장(사진)을 SK에코플랜트 각자 대표이사로 선임한다고 밝혔다. 장 부회장은 그룹 지주사인 SK㈜ 대표이사이자 그룹최고의사결정기구인 SK수펙스추구협의회(이하 수펙스) 커뮤니케이션위원장이었다. 이번 인사로 협의회와 SK㈜ 직책은 내려 놓았지만 SK에코플랜트 대표로 새 커리어를 잇게 됐다. 대표직을 맡는 것은 부회장단 가운데 장 부회장이 유일하다.


장 부회장의 '장기'가 그룹 인사방침(세대교체)에 예외를 허용할 정도로 중요했기 때문이다. 장 부회장은 SK㈜를 투자형 지주사로 발돋움시킨 장본인이다. SK㈜ 뿐 아니라 그룹전체의 투자포트폴리오를 관리했다. 필요한 사업체는 적기에 인수하고, 불필요한 자산은 매각했다. 2017년 1월 SK㈜ 사장으로 부임해 7년간 활약했다.


대표적 투자성과는 2017년 SK㈜가 인수한 반도체 웨이퍼업체 SK실트론이다. 당시는 반도체 시장에 빅싸이클이 도래하기 직전이었다. SK실트론은 계열사인 SK하이닉스에 안정적인 공급망(웨이퍼)이 돼 주었고, 스스로도 막대한 이익을 냈다. 2017년 영업이익이 1300억원 수준인데 지난해는 5600억원대로 커졌다. 이밖에 글로벌 1위 동박 제조사 왓슨(2020년)과 미국 수소에너지기업 플러그파워(2021년)도 적기 인수로 평가받는 성공작이다.


장 부회장은 현 SK에코플랜트 박경일 대표(사장)와 함께 호흡을 맞추게 된다. 다만 역할엔 차이가 있다. 박 사장은 친환경으로의 '확장'이 주된 임무였고 또 공격적으로 임했다. 장 부회장은 그 간의 성과를 재점검하고 효율화시키는 '마무리' 투수 역할을 부여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SK그룹은 2021년 1월 그룹 4대 핵심사업 중 하나로 그린에너지를 천명했는데 박 사장은 그 해 말 SK에코플랜트 대표이사에 올랐다. 그리고 그룹방침에 맞춰 대대적인 투자에 나섰다.


친환경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을 하는 기업을 대거 사들였다. 2021년 폐기물 재활용 사업을 하는 디디에스와 새한환경, 대원그린에너지 등 6개사를 약 4000억원에 인수했고, 미국 연료전지 업체 블룸에너지 RCPS(전환상환우선주)를 3000억원에 인수했다. 2022년엔 해양플랜트 업체 삼강엠엔티(현 SK오션플랜트) 경영권을 4500억원에 사들였다. 2020년 이후 올 상반기까지 친환경 투자에 쓴 자금은 3조6700억원에 이른다.


(사진:한국기업평가 회사채 본평가 보고서)



◇ 거시경제 악화로 재무 부작용…장동현 부회장 '마무리' 투수


단기에 공격적으로 단행한 투자는 재무 불안정을 초래했다. 투자액이 현금창출력을 크게 웃돌았기에 차입이 급격히 확대됐다. 2019년 말 1조원 수준이었던 총차입금은 올 3분기말 5조7117억원으로 치솟았다. 같은 기간 순차입금은 2053억원에서 4조5033억원이 됐다.



시기적으로 운이 좋지 않았다. 공교롭게도 작년 하반기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긴축정책 영향으로 금리가 치솟아 막대한 이자비용을 낳는 부작용이 생겼다. 2019년 600억원대였던 이자는 2022년 1887억원으로 커졌고, 올해는 3분기누적으로만 2324억원을 지출했다. 올 3분기까지 영업이익이 3683억원인데 과반을 이자로 지출하게 됐다.


친환경 투자에 대한 성과도 IPO에 나설 수 있을 만큼 가시적이지 않았다. 투자한 영역에서 매출이 의미 있게 늘고 있지만 이익은 기대 이하다. 환경사업 매출비중은 2021년 8.52%(5300억원)에서 2023년 3분기누적 기준 14.24%(9272억원)으로 높아졌다. 하지만 영업이익은 올 3분기누적으로 115억원 적자였다.


에너지사업도 매출비중이 2021년 6.8%(4241억원)에서 올 3분기누적 20.84%(1조3573억원)으로 크게 상승했다. 다만 영업이익은 올 3분기 누적 516억원으로 이익률이 3.8%다. 같은 기간 전사 영업이익의 17%를 책임지는 수준이다.



여전히 건설이 펀더멘털을 지탱하고 있다. 솔루션사업(건설)은 올 3분기누적으로 매출 4조2292억원에 영업이익 2581억원을 기록했다. 전사 매출의 65%, 영업이익의 86%가 건설업에서 나오고 있다.


현 상태로는 IPO가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 이유다. SK에코플랜트의 최상 시나리오는 국내외 증시에서 높게 평가받는 친환경 기업들의 멀티플을 IPO 기업가치(밸류)에 녹이는 것이다. 현재까지의 성과로는 합리적인 근거를 찾기 힘들다. 그리고 건설업계 멀티플을 적용하면 심각하게 저평가를 받는다. 건설업은 경기침체와 원가상승 악재에 노출돼 있고, 무엇보다 부동산PF(프로젝트 파이낸싱)발 유동성 위기가 올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장 부회장 역할이 명료한 이유다. 앞선 관계자는 "박 사장이 탐색과 확장에 주력했다면 장 부회장은 그간의 결과물을 재검토해 옥석을 가리는 것"이라며 "기대와 달리 부진한 사업체를 매각하고, 진정 부가가치가 있는 친환경 사업에 역량을 집중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사업 구조조정엔 시간이 소요될 수 있기에 IPO도 서두르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다. FI들에게 약속한 IPO 시한은 아직 여유롭다. 2022년 7~8월 1조원 규모의 우선주를 발행하면서 5년 뒤인 2027년까지 상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앞선 관계자는 "2025년 정도를 IPO 적기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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