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가 최근 2년 새 차입금을 급격히 늘린 주요 배경은 인텔로부터 사들인 10조원대 낸드플래시(이하 낸드) 기업 솔리다임의 인수합병(M&A)이다. 세계 2위에 있는 D램사업 대비 크게 뒤쳐졌던 낸드 사업을 강화하고자 2년 전 내린 결단이었다.


타이밍이 불운했다. 공교롭게도 인수 1년 뒤 과거 대비 가파른 다운사이클이 시작됐고, D램보다 낸드 시장은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거액을 써 적자를 낼 기업을 인수한 셈이다. 향후 업황 회복도 D램보다 낸드가 더딜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동안 솔리다임이 지속해 SK하이닉스 발목을 잡을 전망이다.


◇시장 7위서 2위로, 기업용 SSD 장착


SK하이닉스가 솔리다임 인수를 결정한 것은 2020년 10월이었다. SK하이닉스는 인텔이 중국 대련(Dalian)에 설립한 낸드공장을 포함해 낸드사업부 일체를 총 10조3104조원에 인수하기로 했다. 미국에 법인(SK hynix NAND Product Solutions Corp)을 새로 세워 해당사업부의 이전을 추진했다.


(자료:한국기업평가)


대금은 두 차례로 나눠 지급하기로 했다. 1차는 2021년 말로 약 8조원을, 2차는 2025년 3월까지로 약 2조3000억원을 내기로 했다. 2021년 12월 SK하이닉스는 해당법인에 출자를 하며 1차 대금을 지급했다.


당시 SK하이닉스는 현금창출력을 웃도는 설비투자(CAPEX)를 해왔기에 부족한 현금은 차입을 통해 마련했다. 2021년 말 SK하이닉스의 총차입금은 19조1496억원으로 전년 말(12조8954억원) 대비 6조원 이상 늘었다.



당시 인수 가격은 비싸다는 의견이 있었지만 사업적으로는 합리적인 결정이라고 평가받았다. 반도체는 호황과 불황을 오가는 싸이클산업이고 불황기엔 열위한 업체가 도산하도록 유도하는 치킨게임이 벌어지기도 한다.


SK하이닉스는 당시 D램 시장 점유율이 30%에 이르는 글로벌 2위 사업자였다. 반면 낸드 부문에선 5위(점유율 10%)에 머물렀다. 솔리다임을 인수하면 단번에 2~3위권으로 올라서며 경쟁에 대한 부담을 완화시킬 것이란 기대가 흘러 나왔다. 


SK하이닉스의 기존 낸드사업부 제품믹스는 모바일용에 집중됐고 고객사도 애플로 한정돼 있었다. 당시 성장하는 시장이었던 데이터센터용 eSSD(enterprise-Solid-State-Drive)는 기술력이 뒤쳐져 만들지 못했다. 반면 인텔 낸드사업부는 eSSD 강자였다. 결국 M&A는 낸드 제품믹스 강화로 D램과 같은 사업안정성을 갖추기 위한 목적이었다.


솔리다임 인수 전후 SK하이닉스 낸드 점유율(자료:한국기업평가)


◇불황에 낸드 적자 가중…초창기부터 조원대 적자


공교롭게도 1차 인수 대금을 지불한 지 1년 만인 2022년 하반기부터 미국 주도의 긴축정책이 본격화했다. 경기가 침체될 것으로 예상되자 메모리 시장은 B2C 분야에서 PC와 모바일용의 수요가 위축됐고 B2B 역시 데이터센터 고객사들이 주문을 줄였다.


낸드가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은 D램시장 대비 공급사가 많았기 때문이다. D램은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미국 마이크론 3개사가 과점하고 있는 반면 낸드는 앞선 3개사에 일본 키옥시아(옛 도시바)와 미국 웨스턴디지털(WDC), 중국 YMTC 등 6개사가 경쟁한다. 그만큼 가격경쟁이 치열하다.


더불어 D램은 HBM이나 DDR5와 같이 차세대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용 제품 수요가 불황기에도 급격히 확대되고 있다. AI용이 아직 규모는 크지 않지만 가격이 비싼 제품들이라 기존 일반 D램의 부진을 일부 상쇄하고 있다. 반면 낸드는 단순 저장장치 기능만 하기 때문에 AI용으론 고부가가치 제품이 나오기 힘든 구조다. 결국 낸드는 불황 충격을 온전히 맞게 됐다. 


합리적으로 보였던 M&A가 악수(悪手)가 돼버린 셈이다.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 연결기준 영업손실 6조2843억원을 기록했는데 이 중 80%가 낸드에서 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화투자증권은 SK하이닉스의 1분기 낸드 영업손실을 2조3000억원대, D램은 1조원대로 봤다. 2분기엔 낸드 손실이 약 2조8000억원으로 1분기보다 5000억원 가량 늘었다. 반면 D램은 2분기 손실이 약 700억원으로 크게 줄었다.


(자료:한화투자증권)



낸드 손실 상당분은 솔리다임에 기인한 것으로 추정된다. 솔리다임은 비상장사라 영업손실이 공개되지 않는다. 다만 SK하이닉스 재무제표 주석에 매출과 순이익은 기재된다. 솔리다임은 올 상반기 매출 1조2739억원에 순손실 2조2423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2조7455억원)은 절반 이하로 줄었고 순손실은 무려 10배가 됐다.


솔리다임은 같은 기간 SK하이닉스 전체 순손실(5조5733억원)중 절반 수준을 차지할 정도로 큰 영향을 끼치고 있다. 솔리다임은 인수직후인 지난해에도 대규모 순손실(3조3257억원)을 냈는데 이는 통합작업 영향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올 들어 차입이 또 다시 늘어나는데 영향을 미쳤다. 올 상반기 말 차입금은 약 32조원으로 전년 말(약 24조원)에 비해 8조원 가량 증가했다. 적자 속에 설비투자를 지속하기 위해 조달을 한 결과다.


신용평가 업계는 내년까진 낸드발 충격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시장 특성(경쟁강도, AI용 부재) 탓이다. 한국기업평가는 최근 보고서에서 "낸드는 높은 수준의 재고로 인한 가격경쟁이 지속될 것으로 예상돼 평균판매단가(APS) 감소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라며 "더딘 수요회복으로 내년 하반기에 재고수준이 정상화 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설명했다.


◇일각 실패한 M&A 평가…SK하이닉스 "업계 공통 현상, 호황 때 진가"


일각에선 솔리다임에 대해 실패한 M&A라는 평가도 내놓고 있다. M&A가 없었다면 인수 자금과 적자 가중으로 인한 차입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점 때문이다. 고금리시기라 이자 비용 부담이 커졌고 HBM과 같은 성장 제품에 대한 투자가 지속 필요한 것을 감안할 때 기회비용이 크다는 주장이다.


관련업계에서는 현재 SK하이닉스 기존 낸드사업부가 만드는 eSSD 경쟁력이 솔리다임 못지않게 개선된 것으로 파악한다. SK하이닉스와 솔리다임 eSSD는 원천기술이 다른 만큼 솔리다임이 SK하이닉스 기술력에 큰 영향을 주지는 못한다. 결과적으로 솔리다임 존재감이 내부적으로도 희석되는 상황이다.


한 반도체업계 애널리스트는 "그 새 기존 낸드사업부 기술력이 굉장히 많이 올라와 내부에서도 굳이 솔리다임을 인수해야 했었나라는 회의론이 나온다"며 "결과론적이긴 하지만 실패한 M&A라고 본다"고 평가했다. 


이에 반해 SK하이닉스는 낸드 불황은 업계 공통 현상이라며 확대 해석을 경계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낸드는 D램 대비 AI용 업사이드가 제한적이고 재고 수준도 높아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이는 업계 공통적 현상"이라며 "다만 양사간 역량 통합과 비용 구조 개선을 통해 비효율을 제거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어 "향후 시장이 좋아졌을 때 솔리다임 강점인 고사양 eSSD 분야에서 규모의 경제를 확보하고 빠르게 실적이 개선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