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시장은 침체일로다. D램(DRAM)과 낸드플래시 주요 수요처인 PC와 스마트폰, 데이터센터 시장이 글로벌긴축정책 여파로 위축된 탓이다. 하지만 한 줄기 빛이 있다. 챗GPT로 대변되는 인공지능(AI)용 반도체 시장이다.


AI가 기하급수적으로 양산하는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해선 기존 D램을 뛰어넘는 차세대 메모리가 필요하다. 이른 바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가 서로 1위라고 주장하는 HBM(High Bandwidth Memory)이 그 주인공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는 작년 하반기부터 감산이 이뤄지고 있는 반면 HBM은 생산량을 늘리기 분주하다.


한미반도체 적정 시가총액이 최근 9조원대로 평가 받고 있는 이유다. 현재에 비해선 두 배, 연초에 비해선 9배나 높은 수치다. 한미반도체는 최근 한 달 새 1000억원에 이르는 HBM용 생산장비를 독점공급하는 계약을 SK하이닉스와 체결했다. HBM으로 인한 성장의 초입단계에 있는 것으로 평가받는다.


◆ HBM 세계 1위와 계약…AI 시대 주도


현대차증권은 11일 '한미반도체의 진화는 진행형'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적정 주가를 9만3000으로 제시했다. 상장주식수를 곱하면 시가총액이 9조5000억원에 이르게 된다. 이례적이면서 파격적인 전망이다. 전일(10일) 종가가 4만9760원인데 이보다 87%보다 높아질 것이라고 봤기 때문이다. 연초 1만원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8~9배 상승이 된다.


한미반도체 주가(사진:네이버금융)


최근 수주에 기인한다. HBM의 성장성을 사실상 확인한 내용이다. 한미반도체는 올 8월 31일 415억원 규모로 HBM제조 장비 '듀얼TC본더 1.0 드래곤'를 SK하이닉스에 공급하기로 했다. 더불어 9월 27일에는 596억원 규모로 또 다른 HBM 제조장비 '듀얼TC본더 1.0 그리핀'을 SK하이닉스에 납품하기로 했다. 한 달 만에 1000억원대 계약이 이뤄졌다.


HBM은 기존 D램이 진화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쉽다. D램이 단독주택이라면 HBM은 아파트다. D램을 여러 개 수직으로 쌓아 적층구조로 만든 것이 HBM이다. 기존 D램과 비슷한 공간을 차지하면서 보다 많은 데이터를 더 빠르고 효율적(전력사용량감소)으로 처리한다.


차세대 메모리로 불리는 이유다. AI용 서버나 전자기기엔 HBM이 필수적으로 사용된다. AI시장이 개화된 지 얼마되지 않았기에 HBM이 전체 메모리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아직 크지 않다. D램과 낸드플래시가 현재는 주류지만 성장 기대감은 HBM에 있다.


HBM 시장 전망(사진:한국기업평가)


SK하이닉스는 시장조사기관으로부터 HBM 1위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제조사가 3곳 밖에 없는 과점시장이다. 트렌드포스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HBM 점유율은 SK하이닉스가 50%, 삼성전자가 40%, 미국 마이크론이 10%였다.


일찌감치 개발에 착수해 시장을 개척한 영향이다. SK하이닉스가 1세대 HBM을 만든 건 10년 전인 2013년으로 세계 최초였다. 저장용량은 2GB(기가바이트) 였고, 처리속도는 1Gbps였다. 이어 ▲2019년엔 2세대인 HBM2E(8GB/2.4Gbps)를 만들었다. 층수를 4단으로 높여 업계 최고속을 달성했다. ▲2021년엔 8단인 3세대 HBM3(16GB/5.6Gbps)를 역시 최초로 개발했다. 풀HD영상 163편을 1초만 다운받을 수 있는 수준으로 처리속도가 빨라졌다.


(사진:SK하이닉스 2023 기술세미나 자료)


이어 올 4월엔 층수를 12단으로 높인 HBM3모델(24GB/5.6Gbps)을 개발했다. 공간효율이 높아지면서 저장용량이 직전모델(16GB)대비 8GB높아졌다. 추후 2024년까진 HBM3E(24GB/8Gbps) 모델을, 2026년까진 4세대인 HBM4 모델을 내놓을 계획이다. 미래 모델들은 16단 이상을 구상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SK하이닉스는 HBM을 그래픽카드(GPU) 제조사인 엔비디아와 AMD에 공급하고 있다. AI시대 최대 수혜기업들이 고객사다. 엔비디아는 시가총액이 1500조원대, AMD는 230조원대로 치솟아 있다.


◆ 핵심공정 TSV 담당…HBM3‧HBM3E용 공급


한미반도체는 HBM 핵심공정을 담당하는 장비를 만든다. 앞서 이야기했듯 HBM은 D램을 쌓아 만들어지는데 TSV(Through Silicon Via)라는 기술을 통해 데이터들이 층과 층사이를 지나가게 만든다. D램 칩에 수천 개 미세한 구멍을 뚫은 후 상층과 하층 칩 구멍을 수직으로 관통하는 전극을 만들어 연결하는 기술이다.


(사진:SK하이닉스 뉴스룸)


듀얼 TC본더 시리즈는 TSV공법으로 제작한 반도체 칩을 적층하는 본딩 장비다. 개별 칩을 열로 압착해 정밀하게 쌓아 올리는 역할을 한다. HBM세대가 높아질수록 공정이 미세화돼 본딩 난이도도 높아지는데 한미반도체는 최신 모델용을 담당하고 있다.


이번 듀얼TC본더 시리즈 중 드래곤 모델은 HBM3 제조용이고, 그리핀모델은 HBM3와 HBM3E 전부를 만들 수 있도록 설계돼 있다. 더불어 한미반도체가 SK하이닉스에 유일하게 HBM3‧HBM3E용 본딩장비를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협력관계에서의 지위가 최상위권이다.


한미반도체 듀얼TC본더 1.0 그리핀 모델(사진:홈페이지)


그만큼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고, 이 같은 정황이 성장기대감으로 이어지고 있다. 업계에선 나머지 HBM 메이커들인 삼성전자와 마이크론도 한미반도체와의 거래를 고려할 것으로 예상한다. 톱메이커(SK하이닉스)의 핵심 협력사기 때문이다. 특히 글로벌 메모리 1위 삼성전자는 HBM에 있어선 SK하이닉스를 상당히 의식하고 있다. 앞선 SK하이닉스가 1위라는 시장 자료를 내부에선 부정하고 있다. 경계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부문장이 올 7월 임직원 대상 행사에서 "삼성전자의 HBM 시장 점유율은 여전히 50% 이상"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증권은 이번 보고서에서 "SK하이닉스용 HBM제조 장비 수주로 글로벌 입지를 확고히 했다"며 "향후 신규 고객사 확대도 기대된다"고 평했다. 이어 "지난해 TC본더 매출은 7.9%에 불과했지만 2024년부터는 40%비중 이상으로 확대될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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