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재는 공교롭게도 함께 찾아왔다. SK그룹은 SK온 기업공개(IPO) 실기로 인한 자금 조달 부담이 커질 때 쯤 주력 반도체 계열사 SK하이닉스가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는 국면을 맞았다. 투자를 멈출 수 없는 반도체업 특성상 SK하이닉스는 거액의 빚을 내 자금을 충당했다. 그리고 그 규모가 30조원을 넘어섰다.


한때 영업이익이 20조원에 달해 그룹 캐시카우 역할을 하던 SK하이닉스가 '잠재 리스크'로 바뀌었다. SK그룹 차입금이 100조원이 넘어선 것은 사실 SK온보다 SK하이닉스 영향이 더 크다.


◇SK온 모회사 SK이노보다 과중…계열사 중 '빚' 최다


SK하이닉스는 그룹에서 5년래 가장 많이 빚이 불어난 계열사다. 2018년 말 5조2819억원에 불과했지만 올 상반기말엔 32조7865억원이 됐다. 금액으로는 27.5조원이 늘었고, 증가율로는 520%가 된다. 현재 차입규모가 5조원이 넘는 계열사가 7곳인데 이중 최고치다.


SK온을 종속회사로 두고 있는 SK이노베이션은 같은 기간 8조원에서 29조8604억원으로 272%(약 21조원) 늘었다. 이밖에 같은 기간 SK에코플랜트가 498%(약4.7조원), SK E&S가 96%(약 3.7조원), SK네트웍스가 93%(약2.4조원) 증가했다.



최근 국내 신용평가사들이 SK그룹 재무여력을 그룹차원으로 주시하기 시작했는데 그 중에서도 SK하이닉스를 면밀히 보고 있는 이유다.


SK하이닉스는 5년전 만해도 깔끔한 재무를 자랑했던 곳이다. 2018년까지 이어진 반도체 슈퍼싸이클에 기반한 호실적으로 이른 바 '순현금' 상태를 유지했다. 순현금은 차입금보다 현금이 많아 순차입금(총차입금-현금성자산)이 마이너스(-)인 상태를 의미한다. 2018년 당시 매출이 40조원이었는데 영업이익이 20조원(이익률 50%)에 달했고, 순차입금은 -3조874억원이었다.


이후 2019년부터 다운사이클이 시작됐는데 SK하이닉스는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초호황이었던 2018년 설비투자비(CAPEX)가 약 17조원이었는데 2019년에도 이에 못지않은 14.5조원을 지출했다. 여유가 있을 때 선제적으로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는 판단으로 풀이됐다.



결과적으로 옳은 선택이었다. 나빠질 것으로 예상됐던 업황이 2020년 초 코로나19를 만나 반등했기 때문이다. 비대면이 강요되면서 콘텐츠 소비가 늘었고 이는 PC와 모바일, 데이터센터용 메모리수요 회복으로 이어졌다. 2019년 2.7조원대로 주저앉았던 영업이익이 2020년 5조원, 2021년 12조원으로까지 다시 높아졌다. 2020~2021년 CAPEX도 10조원대를 지속했다.


그리고 SK하이닉스는 업황이 다시 슬로우해질 때쯤인 2022년 역대급 투자에 나선다. 그해 영업이익은 약 7조원으로 전년(12.4조원)의 절반 가까운 수준으로 줄었지만 CAPEX로 약 20조원을 지출했다. 호황 정점이었던 2018년(약 17조원)보다도 많았다.


◇불황 직전 10조 M&A…적자로 반년 새 8조 급증


공교롭게도 2022년 4분기를 기점으로 과거의 다운사이클보다 더 심한 강도로 불황이 찾아왔다. 자이언트스텝으로 대변되는 미국 주도의 급격한 글로벌긴축정책이 시작된 탓이다. 경기에 영향을 주면서 PC와 스마트폰 시장이 위축됐다. 더불어 메모리 시장 내 성장 섹터이자 전체 수요의 40%를 차지하던 데이터센터 역시 보수적 투자기조로 돌아섰다.


SK하이닉스와 경쟁사들이 2022년에도 투자를 유지하거나 되레 확대한 것과 맞물리며 메모리시장은 공급과잉 상태가 됐다. 이에 SK하이닉스는 지난해 4분기 1조9000억원대 영업손실을 냈고, 올 상반기엔 6조3000억원으로 손실이 더 커졌다.



그 동안 꾸준히 늘어난 것은 CAPEX와 배당, M&A(인수합병)으로 인한 차입이다. 2019년부터 2022년까지 4년 연평균 영업활동현금흐름이 13조3606억원인데, 같은기간 연평균 CAPEX는 14조6681억원으로 벌어들이는 돈을 1.3조원 이상 상회했다. 더불어 연평균 배당으로 1조원 가량을 썼다.


4년간 약 9조원(연평균 2.3조원)의 자금이 부족했고, 여기에 2021년 말 낸드플래시 업체 솔리다임을 10조원을 주고 인수하는 대규모지출이 더해졌다. 이를 차입으로 충당했다. 2022년 말에 이미 총차입금(24조7917억원)이 2018년 대비 19.5조원 가량 불어나 있었다.



그리고 올 들어 본격적으로 적자가 확대되자 차입의존도가 급속도로 심화했다. 올해는 CAPEX를 전년 대비 50% 수준으로 대폭 줄이기로 했음에도 거액이 비고 있다. 올 상반기에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 6940억원이었다. 돈을 쓰면서 영업을 하게 됐다는 의미다. 여기에 같은 기간 자본적지출로 5조3477억원, 배당으로 4127억원으로 썼다.


수입은 없고 지출만 약 6조4500억원 가량 있었다. 역시 차입으로 충당해 올 상반기말 기준 총차입금(32조7865억원)은 전년 말(24조7917억원) 대비 8조원 가량 증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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