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칠성음료가 회사채를 발행을 할 때 마다 신용평가사 보고서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내용이 있다. 서울의 마지막 남은 금싸라기 땅으로 평가받는 발행사 소유의 '서초동 부지'에 대한 언급이다. 


현재 물류센터 용도로 사용되는 해당 부지는 장부가액으로는 4000억원 규모이지만 자산 재평가를 할 경우 수조원대로 뛸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를 받는다. 재개발이 될 경우 부동산 가치가 더 뛸 수 있어 회계 측면에서 수조원 규모의 자본을 확충할 수 있는 히든카드인 셈이다. 현 신용등급(AA0, 안정적)을 지탱하는 강력한 안전판으로 유동성 확보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


◇회사채, 필요한 만큼만…증액해야 현금 1000억 남아


롯데칠성음료는 유동성을 꼭 필요한 만큼만 갖춰 왔다. 일부 대기업들이 불확실한 거시경제를 염두에 두고 선제 조달에 나서지만 롯데칠성음료에겐 해당사항이 아니다. 서초동 땅 덕에 언제든 조달이 가능하다는 자신감 덕분이다. 결국 필요이상으로 이자 비용이 드는 차입에 나설 이유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최근 회사채 발행 계획에서도 이 같은 자신감이 드러난다. 롯데칠성음료는 최대 2000억원 공모채 모집을 위해 이달 11일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트렌치는 3년물로 단일 구성했고 기본 1000억원 모집에 수요예측 반응이 좋을 경우 1000억원을 증액할 계획이다. 희망 금리밴드는 발행사 3년물 개별민평수익률에 -30bp~+30bp를 가산한 수치로 정했다.


일단은 증액을 해야 유동성에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수준이다. 롯데칠성음료가 1년 내 지출해야 하는 현금이 약 7400억원대로 추산된다. 


우선 증설로 인해 설비투자비(CAPEX)는 2025년까지 매년 2000억원 가량 필요하다. 여기에 연간 배당금으로 약 350억원, 이자비용은 500억원이 요구된다. 1년 내 갚아야 하는 단기성차입금은 올 상반기 말 기준 약 4500억원이다.



반면 1년 내 들어올 현금은 6600억원대로 지출(7400억원)에 미치지 못한다. 올 상반기말 기준 현금성자산 2685억원에 예상 연간 감가상각전영업이익(EBITDA) 4085억원을 더한 수치다. 이번에 회사채를 2000억원 어치 발행하면 총 유입액은 8600억원이 된다. 여기서 지출(7400억원)을 빼면 약 1000억원 가량의 현금이 남는다. 결국 필요한 만큼만 회사채를 발행하는 것이다. 


한국신용평가는 이번 본평가 보고서에서 "올 6월말 현금성자산과 향후 1년간 예상되는 영업현금창출 규모는 1년 내 만기 도래하는 단기성차입금과 CAPEX, 금융비용 등의 자금소유를 충당하기에는 다소 부족하다"고 말했다.


◇'서초 땅' 통해 유동성 상시 조달 가능…조(兆) 단위 자본확충 효과 더해져


그럼에도 신용평가사들은 롯데칠성음료의 유동성 대응 능력에 문제가 없다는 판단이다. 공통적인 근거는 '서초동 땅'이다. 급전이 필요하면 언제든 마련할 수 있는 강력한 담보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평가다. 


강남역 인근 삼성타운 옆에 위치한 해당 부지의 규모는 4만3438㎡(약 1만3000평)다. 삼성타운(2만4000㎡)보다 두 배나 넓다. 본래 1976년 롯데칠성음료 공장이 들어선 땅이나 2000년 공장이전을 하면서 영업소와 물류센터로 운영되고 있다. 서울에서 재개발이 되지 않은 마지막 금싸라기 땅이다.


2022년 3월 서울시가 발표한 '서초로 지구단위계획 구역'(사진:서울도시계획 포털)


업계는 롯데칠성음료 부지가 노른자 지역임을 감안해 가격이 평당 2억원이 될 수 있다고 추산한다. 이 경우 전체(1만3000평) 가격은 2조6000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 국토교통부가 발표한 전국 표준지 공시지가에 근거한 수치다. 서초동 일대에서 가장 비싼 업무용 부지(662.2㎡)가 평당 3억8000억원이란 점에서 평가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롯데칠성음료는 서초동 부지의 가치를 재무제표에서 약 4000억원(장부가액)으로 기재하고 있다. 평당 40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장부상 보여 지는 숫자와 달리 거액의 자산이 숨겨져 있는 셈이다. 


롯데칠성음료의 올 상반기 말 기준 유형자산은 서초동 부지를 포함해 2조원 수준이다. 하지만 실질가치로 보면 서초동 부지(약2조6000억원)만 전체 유형자산 규모(2조원)을 뛰어 넘을 수 있다. 


해당 자산을 담보로 받은 은행대출도 소액이다. 올 상반기말 기준 담보로 제공한 유형자산이 토지와 건물을 포함해 1135억원이고 담보설정금액은 828억원에 그친다. 현재 추가 담보대출 여력도 풍성한데 서초동 부지 실질가치를 더 하면 롯데칠성음료는 차원이 다른 거액을 조달할 수 있는 것이다. 


서초동 부지는 회사채 신용등급에도 당연히 영향을 미치고 있다. 토지를 재평가하면 조단위 자본 확충이 가능하다. 


통상 기업은 유형자산에 대한 회계정책을 원가모형이나 재평가모형 둘 중 하나로 정할 수 있다. 원가모형이란 말 그대로 취득원가에서 감가상각만 반영한 가격을 장부가액으로 기재하는 방식이다. 


반대로 시가(공정가치)로 계산하는 방식을 재평가모형이라고 한다. 2008년 기업회계기준서 개정으로 재평가모형을 택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재평가모형은 전문적 자격이 있는 평가인(감정평가사)으로부터 감정가액을 산출받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평가로 유형자산이 늘어나게 되면 그 규모만큼 자본항목 기타포괄손익으로 인식하게 된다. 롯데칠성음료의 올 상반기말 기준 자본총계는 1조4288억원이다. 서초동 부지 실제 가치를 2조6000억원이라고 치고 단순 계산하면 재평가로 늘어날 자본이 2조2000억원에 이른다. 현 자본총계보다 큰 금액이 자본에 더해지면 총 3조6000억원대에 이를 수 있다. 올 상반기말 기준 160%인 부채비율도 60%대로 낮아질 수 있다.


이에 신평사들도 서초동 부지를 장부가액 상으로 평가하지 않고 실질가치를 일부 반영하고 있다. 한 신평사 관계자는 "발행사 신용등급(AA0)에는 서초동 부지 실질가치가 상당히 반영돼 있다"고 말했다.


서초동 부지는 재개발이 본격화 될 경우 가치가 보다 명확해 질 수 있다. 당국이 관련 규제를 완화하며 재개발에 대한 기대감은 높아져 있다. 서울시는 지난해 3월 서초동 부지를 포함해 서초대로 일대 59만6277㎡를 '서초로 지구단위계획 구역'으로 지정했다. 이 일대는 토지 소유주 간 이견으로 개발이 지연돼 왔는데, 특별계획구역을 소유주별로 세분화해 각자 이해에 따라 개발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다만 롯데그룹은 서초동 부지에 대한 개발 계획을 현재까지 내놓지 않고 있다. 고금리 시기인 만큼 조단위가 예상되는 개발프로젝트에 신중하게 접근하며 신용안전판의 용도로만 활용하고 있는 것이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