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내내 불었던 공모주 시장 광풍이 잠잠해졌다. 이달 들어 현재까지 5건 상장이 있었는데 2건이 상장일에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했다. 더불어 최근 주가기준으론 4건이 공모가를 밑돌고 있다. '묻지마 투자'에서 '옥석가리기'로 분위기가 급격히 전환되고 있다.


이에 일각에선 전진건설로봇을 주목한다 올 상장한 기업들 중 현재까지 주가흐름이 좋은 곳들과 유사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탄탄한 실적에 시장친화적 밸류(기업가치)를 제시했고, 수급도 우수하다.


전진건설로봇은 건설기계인 ‘콘크리트펌프카’계의 현대차로 불린다. 특히 프리미엄시장인 북미에서 1~2위를 다투는 톱티어인데, 이 시장이 인프라투자법 덕에 지속 커지고 있다. 최근 4년 동안 두자릿수 매출증가율을 유지해왔고, 최근 영업이익률은 20%에 이른다. 그런데 밸류에 적용한 PER은 7~8배에 그친다. 상장일 유통가능물량 비중은 16%에 불과하다.


◇ 프리미엄 시장 북미 1~2위, 인프라투자법 덕 수요 커진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올 들어 이달 24일까지 총 33개 기업이 상장했는데 이중 22개 기업이 현재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하고 있다. 광풍으로 부풀려진 공모가에 대한 후유증이다. 특히 1분기 상장한 기업(14개) 중에선 공모주 수익률이 마이너스인 곳은 10개사에 달한다.



1분기 상장한 기업 중 이달 24일 종가기준 수익률이 플러스인 곳은 △우진엔텍(339.6%) △현대힘스(112.9%) △에이피알(17.6%) △엔젠로보틱스(44%) 등이다. 상장하고 상당한 시간이 흐른 곳들이다. 이들을 보면 공모주 수익성이 중장기적으로 좋은 이유가 비교적 선명히 드러난다.


우선 매력적인 에퀴티스토리에 기반한 탄탄한 실적이 있다. 우진엔텍은 SMR(소형모듈원전) 테마주이고, 현대힘스는 조선장비사로 조선업 슈퍼사이클을 맞았다. 에이피알은 개인용 뷰티디바이스로 국내외 시장을 개척해냈다. 모두 상장 전후 좋은 실적을 보여주기도 했다.


밸류도 시장친화적이라고 여겨졌던 곳들이다. 에이피알의 경우 PER 30배까지 수용가능한 펀더멘털을 갖췄다고 평가받았는데 확정공모가 기준 PER은 23배였고, 올 예상순이익 기준 포워드 PER은 17배 수준이었다.


공모주 시장 옥석가리기가 시작된 현 국면에선 더욱 참고해야할 특징들이 됐다. 일부 기관들이 전진건설로봇을 주목하는 이유다. 전진건설로봇은 건설경기에 연동되는 콘크리트펌프카(이하 펌프카)를 제조한다. 레미콘이 운반해온 콘크리트를 붐(Boom)을 통해 고층 건설현장에 타설하는 건설기계(트럭)다.


전진건설로봇 콘크리트펌프카(사진:홈페이지)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지난해 8%로 5위권이다. 특히 북미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25%로 2위를 기록했다. 1위와 격차가 크지 않은 2위라 올해는 1위 달성을 목표로 삼고 있다. 펌프카계의 현대차라 불리는 이유다. 매출 70%가 수출이고, 40%는 경쟁난도가 높은 미국서 벌고 있다.


핵심 에퀴티스토리는 주요 매출국인 미국 수요가 구조적으로 커진다는 점이다. 2021년 11월 미국정부가 1조달러(약 1380조원)를 도로와 철도, 상수도, 전력망 등 사회적생산기반에 투자하기로 하는 인프라투자법(IIJA)을 통과시켰다. 매년 막대한 건설현장이 생겨나고 그만큼 펌프카도 더 필요해진다.


지난해는 터키(튀르키예) 대지진으로 인한 재건수요까지 더해져 유럽매출도 상승세를 타고 있다. 중장기적으로는 우크라이나 전쟁 종식으로 인한 재건수요 성장동력이 된다. 글로벌 톱티어 지위에 있기 때문에 누릴 수 있는 효과다.


덕분에 2020년 912억원이던 매출이 지난해 1584억원으로 커졌다. 2020~2023년 연평균 매출증가율이 20.7%다. 프리미엄 제품을 팔기에 수익성도 우수하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329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20.8%다.



◇ PER 7~8배, 피어그룹은 내수기업


밸류도 시장친화적이라고 평가받는다. 평가밸류는 2957억원으로 최근 1년치(2023년 2분기~2024년 1분기) 순이익인 295억원에 PER 10.02배를 곱한수치다. 할인율(18.46~28.32%)을 적용한 공모가 희망밴드 기준 밸류는 2119억~2411억원이다. PER도 7.18~8.17배로 낮아진다.



공모가가 상단으로 정해져도 PER(8.17배)이 상당히 낮다. 피어그룹 선정에 있어 무리하지 않은 영향이다. 국내 건설기계 제조사인 진성티이씨(PER 10.26배)와 수산중공업(9.79배) 두 곳을 선정했다.


이들은 내수매출 비중이 상당하다. 진성티이씨는 건설중장비인 롤러(Roller)류를 만드는데 지난해 국내 매출비중이 69%다. 수산중공업은 유압드릴과 트럭크레인을 만드는데 내수비중이 51%이고 수출은 아시아 중심이다. 그런데 알려져있다시피 국내 건설경기는 경기침체와 부동산PF 위험으로 좋지 못한 상황이다.


즉 북미·유럽 수요확대와 같은 전진건설로봇의 에퀴티스토리가 피어그룹에는 없다. 수산중공업 등이 받는 멀티플을 전진건설로봇에 대입하면 실제보다 저평가한 것이 된다. 겸손한 밸류로 평가 받는 이유다. 올해도 호실적을 잇고 있기 때문에 올 예상순이익 기준 포워드PER은 더 낮아질 수 있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후하게 보는 쪽에서는 PER 12배까지 부여할 수 있는 에퀴티스토리로 본다”고 말했다.


◇ 대주주 구주매출, 수급엔 긍정적…오버행 우려 해소


수급도 역대 성공한 빅딜들 수준으로 양호하다. 상장 후 유통가능물량이 246만2120주로 상장예정주식수(1536만574주)의 16%에 그친다. 그리고 유통가능물량은 전량 공모주주 보유주식이다. 상장 직후 공모주주들만 주식을 거래할 수 있는 구조다. 재무적투자자(FI)가 없어 수급이 깔끔하다.



대주주가 구주매출을 한다는 게 일부 디스카운트(할인) 요인이긴 하다. 공모액이 425억~483억원인데 100% 구주매출이다. 50%는 최대주주인 모트렉스전진1호가 매각하고, 나머지 50%는 전진건설로봇이 자사주를 매각하는 구조다. 자사주 매각은 신주모집과 같은 효과를 낸다. 때문에 실질적으론 구주매출 50%에 신주모집 50%인 딜과 다를 바 없다.


다만 대주주 엑시트는 보기에 따라선 긍정적으로 해석할 수 있다. 대주주가 현금이 필요하다면 상장 후 지분을 매도하는 것보다 공모과정에서 구주매출을 하는 것이 공모주주들에겐 훨씬 낫다. 상장 후 주가를 짓누를 수 있는 오버행(대규모 매각물량출회) 우려를 해소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트렉스전진1호는 자동차부품사이자 현대차 벤더인 모트렉스가 2018년 전진건설로봇을 인수하기 위해 만든 특수목적법인(SPC)이다. 구주매출은 당시 외부에서 빌린 인수금융을 상환하기 위해 결정했다.


모트렉스전진1호 상장 후 지분율은 74.5%다. 공모주주(16%)와 자사주(5.5%) 외엔 주요주주가 우리사주조합(4%) 밖에 없다. 그리고 공모주주 외 주주들은 최소 6개월 동안 의무적으로 주식을 팔지 못한다. 공모주주 입장에선 우수한 수급환경에서 엑시트할 수 있는 시간(6개월)이 충분하다.


업계 관계자는 "호실적에 시장친화적 밸류, 우수한 수급 등을 감안하면 구주매출로 인한 약점은 충분히 극복가능한 수준"이라며 "HD현대마린솔루션도 FI가 있어 구주매출 비중이 50%에 달했지만, 수급과 펀더멘털(조선업 슈퍼사이클) 덕에 현재까지도 높은 수익률(공모가 대비) 유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진건설로봇과 공모구조가 비슷(구주매출 50%)했던 HD현대마린솔루션은 상장일(5월 8일) 종가 수익률이 96.5였다. 이달 27일 종가기준 수익률은 59.1%다. HD현대마린솔루션도 상장 후 유통가능물량 비중이 16%였고, 전량 공모주주 보유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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