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는 올 들어 네 번째로 코스피 IPO(기업공개)에 도전하는 대어다. 공교롭게도 공모 타이밍은 가장 나쁘다.


공모주 시장 광풍이 지속되는 것을 확인하고 상장예비심사(예심)를 청구했는데, 공교롭게도 직후 시장이 얼어붙고 있다. 올 들어 처음으로 상장일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하는 사례가 나왔고, 후속딜도 비슷한 흐름을 잇고 있다.


기관투자자들은 케이뱅크가 무리한 밸류(기업가치)를 주장할 경우 작년처럼 또 다시 IPO를 접는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고 본다. 일각에선 투심이 꺾인 인터넷은행 종목이 '타이밍'으로 승부를 보려다가 되레 발목이 잡힌 상황으로 평가한다.


◇시프트업까진 무사통과, 이제 대어는 ‘옥석가리기’


케이뱅크가 한국거래소 코스피본부에 예심을 청구한 것은 올 6월 28일이다. 당시 만해도 ‘묻지마’ 투자 광풍이 지속됐다. 올 들어 이날까지 약 29건의 IPO가 이뤄졌는데 27건이 공모가가 ‘상초(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로 정해졌다.



공모가가 희망밴드 상단 대비 얼마나 높아졌는지를 보는 상초 상승률은 평균 21.4%에 달했다. 케이뱅크 예심청구일에 상장한 에이치브이엠(HVM)은 상초 상승률이 26.8%, 전일(6월27일) 상장한 하이젠알앤엠은 27.3%였다.


즉 예심을 통과한 발행사라면 증권신고서에 하자만 없으면 100% 상장에 성공하는 분위기였다. 그것도 발행사가 예상한 것(희망밴드)보다 평균 20%나 비싼 몸값으로 평가받았다. 이른바 '물들어 올 때 노저어야'하는 시기였고, 케이뱅크도 출사표를 냈다. 2023년 초 IPO를 철회한 이후 1년반 만의 재도전이었다.


그런데 예심청구 직후 공교롭게도 광풍을 멈춘 상징적 딜이 등장했다. 바로 이노스페이스다. 올 7월 2일에 상장했는데 상장일 종가(3만4450원)가 공모가(4만3900원)를 20.4%나 하회했다. 올 들어 상장일 수익률(공모가 대비)이 마이너스였던 것은 이노스페이스가 처음이었다.


공모주 광풍을 이끈 동력 중 하나인 상장 후 베팅(포스트IPO)이 실종됐음을 의미했다. 작년 말 이후 30여건 IPO가 상장일 수익률이 50~300%에 이르렀던 기현상은 포스트IPO 투심 덕이었다. 이 탓에 기관들도 단타로 수익을 내기 위해 수요예측 단계에서 묻지마 ‘상초’베팅을 했다. 이 탓에 기관이 가격결정기능을 상실했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이후 코스피 대어로도 분위기가 전이됐다. 4350억원을 공모했던 시프트업이 올 7월 11일 상장했는데 상장일 종가수익률이 18.3%에 그쳤다. 올 들어 시프트업까지 32건 IPO의 상장일 평균종가수익률이 83%인것과 비교하면 크게 낫다.


올 대어 중 케이뱅크 타이밍이 가장 좋지 않다고 보는 이유다. 올 코스피 대어 1~2번 주자인 에이피알(2월26일상장)과 HD현대마린솔루션(5월8일상장) 수요예측 흥행은 물론, 상장일 수익률도 만족스러웠다. 시프트업은 수요예측까진 무난히 치렀다. 경쟁률이 225.94대 1로 앞선 빅딜인 HD현대마린솔루션(경쟁률 201대 1)과 유사했다.


그런데 케이뱅크는 수요예측 단계부터 깐깐한 '옥석가리기' 검증을 받을 전망이다. 과거처럼 묻지마 상초 베팅을 했다가는 이노스페이스 사례처럼 손실을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대어는 물량배정액도 크기 때문에 더욱 신중하게 된다.


◇ 카카오뱅크 PBR 1.7배 불과…케이뱅크 밸류는 3.2조


옥석가리기가 진행되더라도 기업 펀더멘털이나 에퀴티스토리(Equity Story)가 탄탄하다면 사실 문제가 되지 않는다. 우수한 회사는 냉각기에 되레 비교 부각될 수 있다. 케이뱅크 우려되는 이유는 이 같은 매력이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 업종 자체에 대한 신뢰와 기대감이 과거 대비 크게 악화했다. 대장주이자 첫 IPO주자 카카오뱅크가 보여온 행보 탓이다. 카카오뱅크는 ‘혁신 플랫폼’이란 기대감을 안고 2021년 8월 6일 상장했다. 상장일 종가기준 시가총액이 무려 33조원에 달했는데, 시중은행 1위인 KB금융 시가총액(약 21조원)을 12조원이나 웃도는 가격이었다. 이후 같은 달 20일엔 카카오뱅크 시가총액이 무려 43조원으로까지 치솟았다.


카카오뱅크에 대한 기대감이 그만큼 컸다. 플랫폼 기반 특유의 편의성을 기반으로 전통은행들을 잠식해 나갈 ‘메기’가 될 것이라 봤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평가는 카카오뱅크도 기존 은행과 다를 바 없다는 것이었다. 대출이자로 대다수 수익을 내고, 플랫폼 매출은 아직도 미미하다.


실망감은 주가에 그대로 반영됐다. 이달 11일 종가 기준 카카오뱅크 시가총액은 10조3492억원에 그친다. 최고점이었던 43조원과 비교하면 약 3년만에 30조원이 증발했다. 멀티플인 주가순자산비율(PBR) 역시 상장 당시 보다 크게 하락했다.


카카오뱅크 주가(사진:네이버금융)


상장 당시 평가밸류는 약 23조원으로 2021년말 자본총계(2조8495억원)에 PBR 7.3배를 곱한 수치다. 현재 시가총액(10조3492억원)과 올 1분기말 자본총계(6조1176억원)를 대입한 PBR은 1.69배다. 3년 동안 5배포인트 이상 하락했다.


케이뱅크가 2022년 9월 예심승인을 받고도 효력기간(6개월)내 증권신고서를 제출하지 않고 IPO를 철회한 배경 중 하나도 카카오뱅크에 있다. 케이뱅크는 7조~8조원의 밸류를 희망했는데 카카오뱅크에 실망한 시장은 4조원 이상은 무리라고 봤다. 케이뱅크는 카카오뱅크엔 있는 초대형플랫폼(카카오톡)도 없고 자본력도 열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케이뱅크는 이후 1년반 동안 밸류측면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는데 IPO 재도전에 나섰다. 은행은 PBR로 밸류를 평가하기 때문에 순자산(자본총계) 규모가 중요하다. 케이뱅크 순자산은 2021년 말 1조7380억원에서 올 1분기말 1조9182억원으로으로 약 1800억원 가량 늘었다. 기대치인 8조원 밸류로 평가받을 수준은 아니다.



실제 현재 시점 케이뱅크 밸류는 3조2418억원에 그친다. 카카오뱅크 최근 PBR(1.69배)에 케이뱅크 올 1분기말 순자산(1조9182억원)을 곱한 수치다. 공모액을 5000억원으로 가정하고 이를 순자산에 포함시켜 밸류를 구해도 4조868억원(1.69배*2조4182억원) 수준이다.


케이뱅크가 '펀더멘털'보단 ‘타이밍’을 보고 IPO에 나섰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최소 IPO시장 분위기가 올 2분기 수준으로 지속됐다면 케이뱅크도 원하는 밸류(7조~8조원)를 노려 볼 만했다. 시장이 밸류 적정성을 판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눈높이를 낮추지 않으면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IPO 자체가 무산될 수 있다.


한 대형IB 관계자는 “케이뱅크와 같이 사업본질과 에퀴티스토리가 모호한 종목들은 자신이 없기 때문에 '타이밍'으로 상장하려 한다”며 “문제는 좋을 것이라 생각했던 분위기가 금세 부정적으로 바뀔 수 있다는 것인데 그 상황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기관투자자 시각도 비슷하다. 지난해 원했던 밸류를 고집하면 외면 받을 것이란 관측이다. 한 자산운용사 심사역은 “상반기 실적 등을 확인하고 판단해야겠지만, 현 시점에선 밸류가 5조원 이상으로 제시되면 사실상 매력이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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