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스마트폰용 연성인쇄회로기판(RFPCB) 제조사 SI플렉스(에스아이플렉스)가 기업공개(IPO) 계획을 잠정 보류한 것으로 파악된다. IPO 조건으로 유치한 재무적투자자(FI)가 IPO전에 이미 자금회수(엑시트)를 한 영향이다. 올해부터 글로벌 프리미엄 스마트폰 1위인 애플을 대상으로 부품공급을 시작해 현금사정이 여유로워 질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이유다.


17일 IB(투자은행)업계에 따르면 SI플렉스는 올해 내로 추진하려던 IPO 계획을 전면 보류한 상태다. IB관계자는 "IPO 니즈가 전혀 없는 것으로 파악된다"며 "FI가 재작년 엑시트를 한데다 올해 애플공급으로 실적이 큰 폭으로 개선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SI플렉스는 2020년 11월에 400억원 규모 전환상환우선주(RCPS)를 발행하는 형태로 프리IPO(상장 전 투자 유치)를 한 바 있다. RCPS는 채권처럼 만기 때 투자금 상환을 요청할 수 있는 상환권과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할 수 있는 전환권을 동시에 갖는 종류주식(보통주와 다른 주식)이다. RCPS 인수자는 사모투자펀드(PEF) 운용사 도미누스인베스트먼트였다.


해당 RCPS엔 FI가 엑시트할 수 있도록 2024년까지 IPO를 한다는 조건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 △SI플렉스가 목표일까지 상장을 완료하지 않거나 △계약상 주요조항을 위반할 경우 FI가 특별상환을 청구할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됐다. 특별상환을 할 경우 FI에게 원금에 IRR(내부수익률) 연복리 15%를 적용한 금액을 더해 갚아줘야 했다.


SI플렉스는 FI가 특별상환을 받도록 유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FI가 2022년 중에 원금(400억원)에 웃돈 109억원을 얹은 509억원을 상환받았기 때문이다. IRR 연복리 15% 수준을 적용한 금액이다. FI가 2020년과 2021년에 받은 우선주배당금 각 4억원까지 더하면 FI 회수금은 총 517억원이다. 원금(400억원) 대비 회수금(517억원) 수익률은 29.4%다. 투자기간이 약 2년이었음을 감안하면 쏠쏠한 투자였다.



SI플렉스 입장에선 출혈은 있었지만 IPO 강제진행에 대한 짐을 덜어냈다. IPO를 하더라도 원하는 시기에 할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작년 사업적 호재가 있었다. 프리미엄 스마트폰 1위인 애플을 고객사로 유치한 것. 고객사 다변화를 넘어선 성과였다.


SI플렉스는 주요 고객사가 삼성전자 MX(무선사업)사업부와 삼성디스플레이였다. MX사업부 내 서브PBA(Sub-PBA)라는 부품 1위 사업자다. 서브PBA는 FPCB를 모듈화 한 제품으로 △스마트폰 파워키(Power key)와 △홈키(Home key △마이크 △유심카드(USIM-Card) △ 안테나용 등으로 만들어진다.


삼성디스플레이에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용 FPCB와 디지타이저(Digitizer)를 공급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삼성전자와 애플 양사에 OLED패널을 공급하고 있는데, SI플렉스는 그간 삼성전자 OLED패널용 FPCB만 전담했다. 애플 OLED패널용 FPCB 공급자는 국내 비에이치와 영풍전자였다.


그런데 애플용 벤더 영풍전자가 품질문제로 작년 말 밸류체인에서 제외되면서 SI플렉스가 대체자로 합류하게 됐다. 올 하반기 출시되는 애플 신형 스마트폰 아이폰16부터는 SI플렉스가 비에이치와 함께 OLED패널용 FPCB를 공급한다. 공급예상시기는 올 6월로 비에이치가 메인벤더, SI플렉스가 서브벤더다.


덕분에 큰 폭의 실적개선이 예상돼 IPO에 대한 니즈가 더 떨어졌다. SI플렉스는 지난해 연결기준 실적은 아직 공개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해 별도기준으로 매출 3351억원에 영업이익 151억원을 기록했다. 2022년 연결기준 매출은 6893억원, 영업이익은 453억원이었다.


애플 공급이 본격화하면 1~2년 내에 조단위 매출 시대를 열 것으로 전망된다. 물론 올해 애플에 공급하는 FPCB에 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아야 가능한 실적이다. 애플 수주가 예상보다 늘어날 경우 IPO를 재검토할 여지는 있다. 앞선 관계자는 "당장엔 니즈가 없지만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면 IPO를 고려해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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