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위한 수급 앞에 장사 없다"


올 2월 말 상장한 1분기 대어 에이피알에 대한 최근 기관들의 평가다. 우수한 실적과 시장친화적으로 평가받았던 공모가에도 에이피알은 상장 후 주가에 탄력이 붙질 못했다. 한 달여 동안 공모가 주위를 맴돌고 있다.


바로 '수급'이 좋지 못했기 때문이다. 재무적투자자(FI)가 워낙 많아 상장 후 팔려는 사람이 사려는 사람보다 많았고 주가는 지속 짓눌려 왔다.


그런 의미에서 올 상반기 최대어 HD현대마린솔루션은 '수급'은 굉장히 양호하다고 평가받는다. 거대 FI가 있지만 구주매출로 상당량을 털어내고 잔여지분은 보호예수하는 구조라 '수급'은 깔끔하다. 유통물량비중이 10%대인데 전량 공모주주들 지분이다.


◇ KKR 구주매출 50%, 수급엔 긍정적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HD현대마린솔루션은 상장예정주식수가 4445만주인데 이중 16%인 712만주만 상장 직후 유통이 가능하다. 16%는 전량 공모주주(기관+일반)가 보유하게 되는 물량이다.



10%대 유통믈량비중은 상당히 낮은 축에 속한다. 더불어 역대 성공한 빅딜은 유통물량비중이 10%대였던 적이 많았다. 상장 후 팔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 주가가 오를 여지가 크기 때문이다.


특히 상장 후 팔 수 있는 사람이 FI가 아닌 공모주주 위주로 형성됐을 때 주가에 더 긍정적이다. FI는 공모가보다 상당히 저렴한 가격에 선투자한 경우가 대다수다. 주가가 공모가 수준이어도 자금회수(엑시트)에 나설 유인이 크고, 이는 주가에 부정적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 수급이 깔끔한 이유는 FI가 시장에 충격을 덜 주는 방식으로 엑시트를 하기 때문이다. FI는 글로벌 사모펀드인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로 2021년 6월 발행사 지분 38%를 6533억원에 매입했다.


이번 공모액은 공모가 희망밴드 기준 6523억~7422억원인데, 구주매출 비중은 50%이고 전량 KKR 보유지분이다. 구주매출액은 3261억~3711억원이다. 만약 FI가 구주매출을 하지 않고 상장 후 장중매각을 택했으면 수천억원대 오버행(대규모 매각물량 출회) 우려를 낳았을 수 있다. 이는 공모주주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더불어 KKR은 구주매출로 지분율이 상장 전 38%에서 상장 후 24.2%로 낮아지는데, 잔여지분(24.2%)에 대해선 6개월 보호예수를 걸었다. 최소 6개월 동안은 오버행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16%를 보유하게 될 공모주주는 차익을 실현할 시간이 여유롭다.


◇ 에이피알 주가 부진, 수급 중요성 부각


수급에 대한 중요성은 직전 대어 에이피알(공모액 947억원) 덕에 더욱 부각된 상황이다. 수급은 △펀더멘털과 △적정 공모가와 함께 상장 후 주가를 결정짓는 3대요인 중 하나다. 에이피알은 펀더멘털과 공모가 두 가지 측면에선 올해 딜 중에 가장 좋다는 평가를 받았던 발행사였다.


사상 최대 실적을 매년 갱신 중인 곳이다. 지난해 매출 5238억원, 영업이익 1042억원을 기록했는데 전년에 비해 매출은 31.7%, 영업이익은 165.6% 늘어난 수치다. 올해 증권가 예상 매출은 8000억원, 영업이익은 1600억원으로 또 한 번 크게 뛴다.



더불어 기업가치(밸류)도 시장친화적이었다. 공모가(25만원)와 지난해 순이익(815억원) 기준 주가수익비율(PER)이 23.26배였다. 성장이 지속되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포워드PER도 주요 투자지표로 활용됐는데, 올해 예상 순이익(1100억원) 기준으론 포워드PER이 18.5배였다. 그런데 에이피알은 개인용 피부미용 기기 개척자라 기관들은 중기적으로 30배 수준 PER이 형성될 수 있다고 봤다. 그만큼 공모가를 저렴하게 봤던 셈이다.


그런데 에이피알은 가장 최근 영업일인 올 3월 29일 종가가 25만원이다. 올 2월 27일 상장한지 한 달여가 지났는데 주가가 공모가(25만원)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공모주 시장이 과열돼 다른 딜들은 주가가 상장 후 최소 한달 정도는 공모가를 크게 웃도는 현상이 지속되는 반면, 에이피알은 다른 흐름을 보였다.


바로 '수급' 탓이었다. 에이피알은 상장일 유통가능물량 비중이 36.85%대로 적잖았다. 그런데 대다수가 공모주주가 아닌 FI 보유물량이었다. 기존주주 유통가능물량 비중이 32.85%고, 공모주주는 4%에 그쳤다. 공모가 수준 주가로도 엑시트할 유인이 큰 FI들이 많았던 상황이다.


그리고 순차적으로 FI 보호예수 물량이 더 풀리는 구조였다. 한 달 뒤엔 유통물량비중이 48.38%, 2개월 뒤엔 60.06%까지 높아진다. 오버행 이슈가 컸다. '수급 앞에 장사 없다'는 평가가 나온 이유였다.


최근 기관들이 HD현대마린솔루션의 양호한 '수급'에 더 눈길을 쏟는 배경이다.



◇ 수요예측 관문 넘어야, 기관 당 평균 2억~3억 배정 '중압감'


다만 양호한 '수급'도 기관수요예측이라는 첫 관문을 넘었을 때 호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최대어라 기관들도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기관들은 올해 나온딜들이 직전까진 대다수 공모액이 100억~200억인 중소형이라 '묻지마' 투자를 해왔다. 시장이 워낙 과열돼 물량 확보를 최우선 전략으로 택했다.


올 1월부터 현재까지 총 15건의 수요예측이 있었는데, 모두 공모가가가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으로 정해졌다. 웃돈(상단 초과)을 얹어야 그나마 소량이라도 공모주를 배정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올해 딜 대다수 최소 상장일엔 주가가 큰 폭으로 치솟았기 때문에 웃돈을 얹는 것에 대한 부담이 없었다.


에이피알의 경우 공모액(947억원)이 상대적으로 컸음에도 수요예측에 참여한 기관들이 받은 평균 주식수는 105주밖에 되지 않았다. 금액으로는 평균 2646만원이다. 1969개에 이르는 기관이 베팅하며 치열하게 경쟁한 탓이다.


반면 HD현대마린솔루션은 공모액(6523억~7422)이 차원이 다르게 크다. LG에너지솔루션 이후 최대어다. 기관에 배정된 금액(75%)은 4892억~5566억원에 이른다. 2000개 기관이 참여한다고 가정하면 기관 당 평균 배정액이 2.4억~2.7억원 수준이다. 직전딜들보다 크게 많아진다.


시장 분위기를 잘못 읽고 무리한 베팅을 했다가 물량을 계획한 것보다 많이 끌어안을 수 있는 리스크가 있다. 행여 시장과열 현상이 그새 사그라들어 상장일에 주가가 치솟지 않는다면 예상치 못한 큰 손실을 낼 수 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펀더멘털이나 공모가는 에이피알보다 열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지난해 기준 매출 42%를 차지하는 AM(After Market)솔루션 사업은 조선업 슈퍼사이클에 맞물려 순항하고 있다. 반면 41%를 차지하는 벙커링사업은 기본적으로 수익성이 낮은데다 친환경과 배치돼 구조적 역성장이 전망되고 있다.



나머지 17%를 차지하는 친환경개조 사업과 SDV(Software Defined Vessels) 사업은 미래성장동력과 연관이 있는데 작년 역성장을 했거나 규모가 크지 않다. AM솔루션 사업 외엔 당장 매력이 크지 않은데 해당사업에서 나오는 매출(41%)이 절대적이지 않다.


공모가도 부담스럽다는 평가가 나온다. 평가시가총액이 4조7612억원인데 적용PER을 31.5배로 제시한 결과다. 선박 에프터서비스(AS) 기업이 30배가 넘는 멀티플을 받아도 되는지에 대해 기관들이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여기에 IPO 시장 대표적 할인요인인 'FI 구주매출'이 있는 딜이라는 점도 공모가에 대한 저항감을 더한다.


한 기관투자자는 "HD현대마린솔루션은 현재 실적과 밸류로 작년 상반기에 도전했으면 상당히 어려운 딜이 됐을 것"이라며 "PER은 높은데 FI 구주매출이라는 할인 요인까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현재는 시장이 과열돼 있고 발행사 수급도 시장친화적이기 때문에 어떤 결과를 낼지 예단하기 힘들다"며 "수요예측이 흥행한다면 상장 후 주가는 좋은 흐름을 보일 것으로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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