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브랜드가 2023년 온기 순이익으로는 PER(주가수익비율)로 원하는 기업가치(밸류)가 산출되지 않으니 PBR(주가순자산비율)로 선회한 것 같다. 다만 전통산업(의류ODM)은 PBR과 어울리지 않는다"


한 대형증권사 IPO(기업공개) 실무자의 이야기다. 노브랜드가 증권신고서를 정정하면서 적합하지 않은 밸류평가방법을 택해 논란이 일고 있다. 의류업과 같은 소비재산업은 PER이 일반적으로 쓰이는데, 금융권이나 업황변동성이 큰 업종에 쓰이는 PBR로 선회했다.


목적은 '밸류'에 있다. 노브랜드는 첫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이후 금융감독원이 정정을 요구하면서 실적을 최신으로 갱신하게 됐다. 그런데 가장 최근 분기인 지난해 4분기 순손실을 냈다. 악화된 실적에도 처음 원했던 밸류를 유지하려면 평가방법을 바꿔야 했다. 전례가 거의 없다는 게 문제다.


업계에선 노브랜드가 최근 공모주 시장이 과열돼 있기 때문에 과감히 무리수를 둔 것으로 보고 있다.


◇PER 기준 최초 밸류 1200억, 손실 반영시 500억


노브랜드는 이달 2일 2차 정정 증권신고서를 통해 밸류평가방법을 PER을 PBR로 바꾼 사실을 공개했다. PBR 기준 평가 시가총액(밸류)은 1281억원인데, 지난해 말 기준 순자산(978억원)에 적용 PBR 1.31배를 곱한 수치다.



공모가 희망밴드는 8700원~1만1000원이다. 평가밸류를 적용주식수(995만113주)로 나눈 주당 평가액(1만2883원)에 할인율 14.45%~32.34%를 적용한 결과다.


평가방법만 바뀌었지 밸류와 공모가는 직전과 거의 차이가 없다. PER 기준 평가밸류는 1258억원이었다. 지난해 3분기누적 순이익을 연환산한 금액(111억원)에 적용 PER 11.3배를 곱한 수치다. PBR 기준 평가밸류(1281억원)가 PER 기준(1258억원)보다 23억원 가량 높다.



PER 기준 공모가 희망밴드는 8700원~1만1500원이었다. PBR 기준과 비교하면 희망밴드 상단(1만1000원)가격만 500원 가량 저렴해졌다. 밸류 뿐 아니라 공모가도 기존 눈높이를 유지한 셈이다.


평가방법을 바꿔야 할 이유가 있었다. 최초 증권신고서를 제출한 것은 올 3월 5일이다. 당시는 2023년 회계연도에 대한 연간 결산이 안된 시점이다. 이에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순이익을 기반으로 PER 방식으로 밸류를 구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PER방식이 유효했다. 지난해 3분기까지 누적 순이익은 48억원이다. 여기에 일회성비용인 세무조사 추징액 35억원을 더해 실질적으론 83억원(48억+35억원)을 벌었다고 가정(조정순이익)했다. 83억원을 연환산한 것이 적용순이익(111억원)이었다.



그런데 같은 달 18일 1차에 이어 이달 2일 2차 정정까지 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2023년 온기 결산수치를 반영할 수 있는 시기가 됐다. 통상 비상장사는 3월 말이나 4월초 까지 연간 감사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작년 4분기 실적집계가 마무리됐는데 순손실 40억원을 기록했다. 같은 해 3분기까지 누적순이익(48억원)에 버금가는 적자가 났다. 이 탓에 연간 순이익은 고작 8억원에 그쳤다. 일회성비용 세무조사 추징액(35억원)을 더해도 적용순이익이 43억원에 그쳤던 상황이다. 직전 적용순이익(111억원)의 3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PER 방식을 유지할 경우 밸류 역시 크게 하락한다. 직전 방식과 동일하게 계산할 경우 평가밸류는 493억원이 된다. 적용순이익을 온기 기준(43억원)으로 바꾸고 적용PER을 기존과 같은 11.3배로 곱했을 때 나오는 수치다. 직전 밸류(1258억원)의 3분의 1수준이 된다.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PBR 택한 배경 '자기모순'


결과적으로 PBR로 바꾼 배경은 '밸류 고수'에 있다. PBR은 자산총계에서 부채를 뺀 순자산(자본총계)을 기반으로 밸류를 구하는 방식이다. 고정자산이 사업에 큰 영향을 미치는 금융업에서 대표적으로 활용하는 비교지표다. 은행은 순자산에 기반한 레버리지로 사업을 영위하기 때문에 순자산 크기가 곧 영업경쟁력이 된다.


금융업 외엔 조선업이 주로 쓴다. 조선업은 대규모 사업장(조선소)이 필요해 순자산이 경쟁력에 역시 영향을 미친다. 더불어 호황과 불황이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사이클이 있는 것도 PBR이 필요한 이유다. 수천억원대 흑자를 내다가 수년 뒤엔 적자행진이 이어진다. 불황기엔 업종 내 대다수 기업이 적자인 경우가 많으니 순이익 기반인 PER을 사용할 수 없다. 즉 고정자산 비중이 크면서 '사이클'이 있는 산업이어야 PBR이 비로소 합리성을 얻는다.


그런데 노브랜드가 영위하는 의류업은 '의식주'에 포함된 대표적 소비재다. 변동성이 크지 않은 경기방어주 중 하나다. 소폭의 실적등락은 있지만 안정적으로 현금(이익)을 창출하는 업종이다. '안정성'이 매력이다. 때문에 소비재 업종은 PER로 비교하는 것이 일반적이고 PBR은 전례가 거의 없다.


간혹 PER 외에 예외적 평가방법을 쓰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이는 업종 내 독보적 경쟁력을 갖췄을 때에 허용된다. 밸류에 프리미엄을 줘야 하는데 PER로는 불가능할 때다. 쿠팡이 대표적 사례로 볼 수 있다.


앞선 관계자는 "PER이 아닌 예외적 평가방법을 쓰는 경우는 발행사가 업종 내에서 두드러진 경쟁력이 있어 프리미엄을 줘야 할 때"라며 "조선업에 PBR이 허용되는 건 업황에 대한 사이클이 워낙 커 이익기반으로만 볼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노브랜드측은 PBR을 택한 근거에 대해 높은 고정자산 비중과 누적된 이익을 제대로 측정받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정정 증권신고서에 "노브랜드가 영위하는 사업은 연간 수천억원 규모 매출을 발생시킬 수 있는 공장과 설비 등이 필요한 바, 고정비 비중이 높은 특성을 보이고 있다"며 "이에 따라 매출 대비 이익 변동성이 높아 (중략) PBR을 택했다"고 기재했다.



노브랜드 고정자산(유형자산)은 지난해 말 기준 614억원으로 전체 자산(2259억원)의 27.1%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작지는 않지만 절대적이라고 볼 수는 없는 수준이다.


노브랜드 PBR 채택사유는 자기모순적 측면도 있다. 최초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PBR 제외사유엔 "노브랜드는 금융기관이 아니며, 고정자산 비중이 크지 않아 순자산가치가 상대적으로 중요하지 않기 때문에 (중략) PBR을 제외했다"고 기재했다. 밸류평가방법을 바꾸면서 PBR을 보는 시각도 바꿨다.


업계에선 노브랜드가 무리수인걸 알면서도 공모주 시장이 과열돼 있기 때문에 과감한 도전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올 들어 현재까지 15건의 기관수요예측이 있었는데 모두 공모가가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한 가격으로 정해지고 있다. 이른 바 기관들도 공모주 확보를 위해 묻지마 베팅을 하고 있다. 상장일에 주가가 공모가 대비 100% 내외로 치솟는 기현상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상장일에 주식을 매각하면 '묻지마' 베팅을 해도 손해를 보지 않는다. 밸류 적정성에 대한 평가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선 관계자는 "발행사 입장에선 작년 4분기 실적이 예상보다 저조해 두 가지 방안을 고민했을 것"이라며 "공모 계획을 접고 제대로 된 실적이 집계될 때 재도전하는 것과 과열 국면을 이용해 강행하는 것일 텐데 후자를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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