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산로보틱스가 기업공개(IPO) 수요예측에서 소위 '대박'을 냈다. 공모액이 4000억원이 넘는 빅딜임에도 270대 1수준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특히 허수청약을 제한하는 제도변경 이후 첫 빅딜이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실수요로만 청약금액이 63조원에 달한다.


굵직한 해외 기관투자자들을 유치에 성공한 것이 포인트다. 싱가포르투자청(GIC)과 블랙록 등 글로벌 큰손들이 대거참여했다.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롱펀드들이다. 발행사의 중장기 성장성을 인정받은 것과 더불어, 상장 후 주가흐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투자은행(IB)에선 외국계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와 글로벌 인프라가 풍부한 미래에셋증권 역할이 컸다고 평가한다.


◆ 직전 빅딜 파두와 '질'다른 경쟁률


두산로보틱스는 19일 증권신고서 정정공시를 통해 기관수요예측(8월 28일~9월 14일 진행) 결과를 공개했다. 총 공모주식수는 1620만주였고 100% 신주모집이었다. 공모가 희망밴드는 2만1000원~2만6000원, 전체 공모액은 3402억~4212억원인 빅딜이다. 수요예측 흥행으로 공모가는 상단인 2만6000원, 공모액은 4212억원으로 확정했다.


무려 24억2379만5018주가 신청돼 경쟁률 272.03대 1을 기록했다. 직전 빅딜이었던 파두(1937억원 공모)가 기록한 기관 경쟁률인 362.90대 1보다 낮다. 하지만 실수요로만 거둔 결과라는 점에서 질이 다른 역대급 흥행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파두까지는 허수청약이 가능했다. 기관 운용자산(AUM)에 상관없이 풀베팅(기관 배정물량 전체 청약)이 가능했다. 가령 AUM이 100억원에 그치는 운용사도 수천억원을 신청할 수 있었다. 경쟁률에 거품이 끼어있던 것이고 이는 투심을 왜곡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이에 금융투자협회는 올 4월 'IPO시장 건전성 제고를 위한 인수업무규정 개정'에 나섰는데 기관이 AUM을 초과한 금액을 베팅할 수 없도록 한 것이 골자다. 올 7월 1일 이후 증권신고서를 제출하는 발행사부터 개정안이 반영됐고, 두산로보틱스가 첫 번째 빅딜주자였다.


두산로보틱스는 실수요로만 청약금액이 63조187억원에 달했다. 공모가 상단에 신청주식수를 곱한 수치다. 풀베팅이 가능했던 파두는 기관 청약액이 공모가 기준으로 약 48조원이었다. 차원이 다른 흥행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다.



내용면에서도 우수하다. 신청물량의 88.88%(21억5421만주)가 공모가 상단 이상 구간에 신청했다. 미제시가 11.12%이고 나머지 구간엔 베팅이 없었다. 그만큼 물량확보 경쟁이 치열했다는 의미다.


주식을 일정기간 팔지 않기로 하는 의무보유확약도 대폭 걸었다. 신청물량의 51.6%가 확약이다. 6개월이 13.4%, 3개월이 24.4%, 1개월이 12%, 15일이 1.8%다. 미확약은 48.4%다. 상장 후 매도물량이 그만큼 제한되는 것으로 주가 흐름을 밝게 만드는 요인이다.



◆ 글로벌IR 3주 강행…큰 손들 대거 유치


또 다른 큰 성과는 해외기관 투심을 사로잡았다는 것이다. 두산로보틱스는 청약자금 중에서 12%(7조5924억원)가 해외기관 베팅액이다. 글로벌 큰손인 싱가포르투자청(GIC)과 세계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 골드만삭스, 라이온글로벌, 노르웨이중앙은행 등을 비롯해 총 256곳이 참여했다.


특히 두산로보틱스를 통해 국내 IPO주식에 입문하게 된 해외기관이 과반이다. 256곳 중에 134곳이 국내 주식거래가 없던 곳이다. 그만큼 글로벌 IR을 성공적으로 진행한 셈이다. 그리고 글로벌 큰손들은 장기투자를 지향하는 롱펀드들이다. 주가에 우호적인 요인이다. 두산로보틱스가 중장기 성장성을 인정받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비결이 있었다. 두산로보틱스는 영위하는 협동로봇(코봇, Cobot)이 커지는 시장이란 점에 이견이 없다. 전통적인 산업용 로봇은 제조현장에서 제품 생산과 출하 작업을 수행한다. 대량생산을 위한 자동화에 최적화 돼 있다. 로봇에 의해 사람이 다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펜스를 장착해야하고 가격도 비싸다.


코봇은 생산활동을 기계가 단독으로 수행하지 않고 사람과의 협업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는 것으로 목표로 한다. 무거운 물체를 옮기거나 반복적인 작업을 수행하는데 사용된다. 사람과 같은 공간에 있기 때문에 안정성을 갖춰야 한다. 크기가 중소형이라 다품종 변량 생산에 적합한 측면이 있고 가격도 전통로봇 대비 저렴하다. 코봇이 전에 없던 역할을 하고 있는데 가격도 저렴해 시장이 매년 커지고 있다.


(자료:증권신고서)



하지만 좋은 매물도 제대로 투자자들에게 알려야 빛을 볼 수 있다. 대표주관사인 CS와 미래에셋증권이 그간 관리해온 기관들을 대상으로 무려 3주(8월 28일~9월15일)에 걸쳐 싱가포르와 홍콩 등에서 현지 IR을 진행했다.


CS에서 IPO를 담당하고 있는 한국지사 '투자금융 및 발행시장 부문'은 평시에 국내 상장 주식(equity)에 대한 평가와 투자전략을 글로벌 기관들에게 제공하는 자문 업무를 병행해왔다. CS 고유의 밸류에이션 툴인 홀트(HOLT)를 활용한다. 홀트는 30년이 된 평가시스템으로 전 세계 70여개국 2만여개 기업 재무데이터를 동시에 분석해 유망 주식을 발굴하는데 쓰인다.


미래에셋증권은 IPO본부가 싱가포르 법인에 신디케이션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현지 기관들과 수시로 미팅을 하며 국내 발행주식과 투자전략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한다.


이에 이미 글로벌기관들은 CS와 미래에셋증권과 주기적 소통에 기반한 신뢰를 갖추고 있었고, 이번 IR에서 제시한 두산로보틱스 에퀴티 스토리도 눈여겨 들여다봤다는 후문이다. 주관사들은 코봇 시장이 이미 개화기를 넘어 본격적인 성장기에 접어들었다는 것을 적극 어필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두산로보틱스 매출은 2020년 201억원에서 2021년 369억원, 2022년 448억원으로 매년 커졌다. 


IB업계 관계자는 "막연한 성장 기대감이 있는 곳이 아니라 이미 개화기를 넘은 상태로 내년과 내후년 예상 실적이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어필한 것이 주효했다"고 말했다.


두산로보틱스는 오는 21일부터 22일까지 양일간 일반투자자 청약을 진행해 공모를 마무리 지을 계획이다. 상장예정일은 10월 5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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