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 단계서부터 재무적투자자(FI)인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의 입김이 클 것으로 예상된다. 주관 후보들에게 보낸 입찰제안요청서(RFP)에 영문 버전을 따로 요구했다. 일각에선 KKR의 구주매출 가능성도 배제하지 않고 있다.


1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지난 16일 국내외 대형증권사들을 대상으로 RFP 접수를 마감했다. 발행사 요청에 따라 국내와 외국계 증권사에게 20페이지 분량의 영문버전 입찰제안서를 별도로 작성해 낸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 빅딜에선 찾아볼 수 없었던 이례적인 요구라는 것이 IB업계 평이다.


결국 KKR이 딜의 첫 단추인 주관사 선정단계부터 관여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KKR은 미국 최대 사모펀드 중 하나다. 올 2분기 말 기준 운용자산(AUM)이 약 5185억달러(한화 695조원)에 이른다.


KKR 본사 수장이 한국계 미국인인 조셉 배(배용범)인데 한국에서 성공적으로 엑시트(자금회수)를 한 기억이 많다. OB맥주 엑시트가 대표적이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인 2008년에 18억달러에 인수했는데 2014년에 58억달러를 받고 AB인베브에 매각하는 '대박'을 냈다. 2017년에도 LS엠트론 동박사업부를 3000억원에 인수해 2년 뒤 1조2000억원에 팔기도 했다. KKR은 한국사무소도 별도로 두고 있다. 박정호 서울사무소 대표가 이끌고 있다.


이번 영문버전 요구는 본사 차원의 딜 검토를 암시한다. 서울사무소가 딜을 전담했다면 영문버전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본사가 직접 나서면 딜에 대한 관여 강도가 더 높을 수 있다. 더불어 FI의 최종 목표는 결국 엑시트다. IPO 흥행은 물론 KKR의 엑시트를 원활히 도울 수 있는 방안을 수립한 주관사가 유리할 수 있다.


KKR은 상당한 금액을 발행사에 투자해 뒀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본래 현대중공업(현 HD현대)의 AS사업부가 2016년 물적분할된 회사다. 이에 KKR 투자전까지 HD현대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었다. HD현대는 2021년 6월 지분 38%를 KKR이 설립한 투자목적회사 글로벌베셀솔루션(Global Vessel Solutions, L.P.)에 6533억원을 받고 매각했다. 당시 지분 100% 가치는 1조7200억원이었다.



KKR 보유 물량이 전체 지분의 3분의 1이 넘을 정도로 상당하다. 일각에선 이번 IPO에서 구주매출로 일부 지분을 매각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KKR이 구주매출을 하지 않으면 상장 한 이후에 오버행(잠재적 매도물량) 우려가 지속될 수 있고 이는 주가 상승 여력을 제한할 수 있다. 장내매각을 현실화하면 주가에 직접적 영향을 준다. 결국 KKR 엑시트에 유리하지 않다.


달리 보는 시각도 있다. KKR 투자기간이 이제 2년이 지난 시점이기 때문에 좀 더 기다릴 여유가 있다는 관측이다. KKR이 구주매출을 하지 않으면 IPO가 흥행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보다 많은 공모자금(신주모집분)이 회사로 유입될 수 있다. 회사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고 이에 따라 주가에 탄력이 붙으면 KKR은 중장기적으로 더 높은 수익을 도모할 수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KKR도 결국 엑시트가 목적인 FI이기 때문에 당연히 구주매출 니즈는 있다고 본다"며 "물론 이번에 구주매출을 배제해 발행사 주가를 키워서 파는 전략도 가능하다"고 말했다. 이어 "영문버전은 본사가 보기 위한 요구라는 느낌이 든다"며 "엑시트에 가장 중요한 밸류에이션에 관여할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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