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그룹 소속 최고재무책임자(CFO)는 회사 내 위상이 최고경영자(CEO) 못지않은 경우가 많다. CEO를 견제하도록 키워진 덕이다. 대기업그룹은 말 그대로 거대한 조직이다. 계열사 CEO만 수두룩하고 누군가는 이들이 경영을 제대로 하는지 감시 혹은 견제해야 한다. 대기업그룹 총수는 그 역할을 숫자에 밝은 CFO에게 주로 맡긴다. CFO들이 대주주의 비서실장 역할을 하는 셈이다.


HD현대그룹은 경영권 승계작업이 과도기에 있다. 대주주인 정몽준 아산재단 이사장은 일찍감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지분은 장남인 정기선 HD현대 사장에게 물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정 사장은 수년전부터 경영보폭을 키우고 있다. 자연스레 정 사장이 앞으로 곁에 둘 'CFO'가 누가될 지 관심이 쏠린다.


관련해 최근 부각되는 인물이 있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 CFO인 김정혁 상무다. 정 사장이 경영전면에 나설 때부터 현재까지 같은 조직에서 손발을 맞추고 있다. 무엇보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 기업공개(IPO) 책임자로 발탁됐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정 사장이 주장해 설립된 곳이자, 처음으로 대표직을 수행한 곳이다. 상징성이 큰 회사 IPO를 김 상무가 맡았다.


◇김정혁 상무, 74년 생 '젊은 피'


정 사장은 1982년 생으로 올해 41살이다. 경영수업을 시작한 것은 27세 나이인 2009년으로 현대중공업(현 HD현대) 재무팀 대리로 입사했다. 2013년 경영기획팀 부장과 2015년 기획실 부실장으로 승진했다.



그리고 입사 9년만인 2018년부터 경영전면에 나섰다. 세 가지 축으로 역할을 맡았다. 지주사인 HD현대 경영지원실장(부사장)으로 부임해 그룹에 대한 큰 그림에 관여했다. 더불어 HD현대중공업 그룹선박해양영업본부 사업대표도 맡아 주력사를 챙겼다.


마지막은 자신이 만든 회사 HD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직 수행이었다. 그의 첫 대표 이력이다. 경영실력 입증무대로 HD현대글로벌서비스를 택한 셈이다. 당시 그룹 대표 전문경영인이자 정 사장의 멘토인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정기선 부사장이 2014년부터 강력히 주장해 세운 회사"라며 "스스로 책임지고 경영능력을 입증해야 한다고 판단해 대표이사를 맡겼다"고 언급했다.


정 사장이 경영전면에 나서면서 필요성이 커진 것은 참모다. 그리고 2018년 이후로 현재까지 정 사장이 속한 조직에서 함께 손발을 맞추고 있는 몇 안되는 인물이 김정혁 상무다. 김 상무는 1974년생으로 올 49세다. 그룹 대표 CFO들인 송명준 HD현대 부사장(1969년생)과 강영 HD현대중공업 부사장(1965년생)보다 한 두 세대 젊다.


◇지주사 시절부터 손발…주요 계열사 관리하다 IPO 중책


김 상무는 그간의 이력을 보면 '투자'에 강점이 있다. 서울대 국제경제학과를 졸업한 후 하이투자증권에 입사했는데 자기자본(PI)투자팀에서 투자역을 담당했다. 하이투자증권은 과거 HD현대그룹 소속이었다가 2018년 DGB금융그룹에 매각됐다. 이후 현대오일뱅크에서 경영분석(팀장)과 신사업개발(팀장)을 담당했다.



그가 임원 승진과 함께 다양한 역할을 맡기 시작한 것은 정 사장과 함께 일하면서다. 2018년 말 상무보로 승진하면서 HD현대 경영지원실 재무지원부문 담당임원이 됐다. 당시는 정 사장이 HD현대 경영지원실장을 맡은 직후다. 정 사장이 직속 상사가 됐다.


더불어 김 상무는 지주사 재무담당임원으로 계열사 관리를 시작했다. 사내이사를 겸직하며 직접 경영에 참여했다. 2019년 초 그룹이 신성장동력 발굴을 위해 설립한 HD현대미래파트너스 초대 사내이사로 부임해 2020년까지 일했다.


HD현대미래파트너스는 '그룹의 바이오 사업 진출'을 상징하는 회사로 화제가 됐던 곳이다. HD현대미래파트너스는 2020년 7월 디지털헬스케어 업체 메디플러스솔루션을 인수했고, 2021년엔 암크바이오를 설립해 신약개발을 시작했다. '투자' 실무경력이 있는 김 상무에게 기초공사를 맡긴 셈이다.


그리고 2020년부터는 2021년까지는 HD현대미포조선과 HD현대로보틱스 사내이사직도 겸직했다. 2021년 중엔 HD현대사이트솔루션(옛 현대제뉴인) 사내이사로도 있었다. 정 사장이 2021년까지 HD현대 경영지원실장으로 있었기에 모두 정 사장 관리 하에 수행한 업무다.


이후 정 사장은 2021년부터 경영보폭을 확대했는데 김 상무도 이에 맞춰 움직였다. 정 사장은 대표직 범위를 지주(HD현대)와 조선중간지주(HD한국조선해양)로 넓혔다. 그리고 HD현대글로벌서비스 대표직은 내려놓고 이 회사 경영지원부문 총괄사장으로 남았다.


대신 김 상무가 2021년 말 HD현대글로벌서비스 경영지원부문장(CFO)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김 상무가 직속 상사로 정 사장을 보필하게 됐다. 김 상무는 이 때부터 계열사 겸직을 하지 않고 HD현대글로벌서비스 업무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로부터 1년 반 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IPO를 본격 추진했다. 김 상무에게 IPO 중책이 부여된 셈이다. 정 사장 시대 CFO가 될 것으로 보여지는 이유다.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이달 말 주관사 선정을 위한 프레젠테이션(PT)을 진행할 계획이다. 이 자리에는 정 사장은 참석하지 않기로 한 것으로 파악된다. 김 상무 등 HD현대글로벌서비스 경영진과 지주사 CFO 송 부사장이 참석해 PT 심사를 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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