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글로벌서비스의 기업공개(IPO) 주관사 선정 결과를 두고 국내 IB(투자은행) 다수가 허망한 심정을 감추지 않고 있다. 이미 짜여진 판에 들러리를 섰다는 볼멘소리가 나온다. 


IPO 주관 레코드나 역량보다는 다른 역학관계가 작용했다는 평이 나올만한 결과 탓이다. 과거 빅딜 때와 달리 외국계에 대거 힘이 실린 것을 두고 2대주주이자 재무적투자자(FI)인 KKR의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 입김이 작용했다는 추정이 이어진다. 선정된 국내 주관사들도 대부분 은행계열 IB들 위주다. 향후 HD그룹 유동성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곳들에 대한 선제적 조치란 풀이도 나온다. 


일각에서는 HD현대글로벌서비스가 너무 많은 후보자들을 초청한 것을 문제로 지적하고 있다. 무려 13곳에 이르는 주관후보들은 한 달 가량 매달려 입찰제안서 뿐 아니라 프레젠테이션(PT)을 준비했다. 애초 생각해둔 파트너가 있었다면 숏리스트(우선협상대상자)를 추려 진행해야 했다는 지적이다.


◇외국계 JP모간·CS 대표주관...4~5개월 사전접촉, KKR 입김 관측


IB업계에 따르면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이달 1일 대표주관사로 JP모간과 UBS, KB증권 등 3개사를 선정했다. UBS는 올해 인수한 CS의 IB조직이 IPO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공동주관사는 하나증권과 신한투자증권 등 2개사다.


이번 주관사 선정 결과는 지난 2021년 HD현대중공업 IPO 당시와 달리 외국계에 힘을 더 실은 모습이다. 당시 HD현대중공업은 한국투자증권과 미래에셋증권 등 국내 2개사와 외국계 CS 1개사 등 총 3곳을 대표주관사로 선정했고, 공동주관사와 인수단은 전원 국내사로 꾸렸다.



일각에서 '짜여진 판'이었다는 추정이 나온 것은 발행사와 외국계IB들간 사전접촉이 있었기 때문이다. 한 IB관계자는 "주관사 선정을 본격화하기 4~5개월 전부터 발행사가 비공식적으로 외국계IB들에게 IPO에 대한 조언(가제안서)을 구했다"며 "결국 외국계를 전면에 세웠다는 점에서 KKR 영향이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이와 관련 HD현대글로벌서비스는 올 7월 25일 RFP(입찰제안요청서)를 보냈는데, 이례적으로 제안서를 영문버전으로 함께 써올 것을 요구했다. KKR이 주관사 선정에 관여한다는 의미로 읽혀지는 대목이다. 


KKR은 2021년 6월 발행사 지분 38%를 6533억원에 매입해 2대주주가 됐다. FI이기 때문에 자금회수(엑시트)가 목표인데 국내 IB보단 외국계를 선호할 수 있다. 반면 국내IB는 HD그룹과 국내 투자기관들이 주 고객사다. FI보다는 발행사와 자본시장 입장을 우선할 수 있다.


◇국내 IPO 빅3 제외, 은행계열 집중...하나은행 등 HD현대에 7조 대출


국내 주관사로 선정된 곳들은 모두 대형은행의 계열사인 곳이다. KB증권은 KB국민은행, 하나증권은 하나은행, 신한투자증권은 신한은행과 연결된다. 4대 시중은행 가운데 3곳의 계열사들이 주관사로 자리한 것이다. 


HD그룹은 부채자본시장(DCM)에서 자금조달이 활발한 곳이다. 올 상반기에만 HD현대와 HD현대오일뱅크 등 계열사들이 1조4060억원 규모 공모회사채를 발행했다. 국내 시중은행들이 이들이 발행하는 회사채의 주요 고객이다. 회사채 뿐 아니라 간접금융 규모도 상장하다. 지주사인 HD현대는 올 상반기말 연결 기준 하나은행 등으로부터 4조3105억원을 장기차입하고 있고, 3조1626억원 시설자금대출을 받고 있다.


주관사로 선정된 증권사 중 IPO 트랙레코드가 톱티어급인 곳은 KB증권 정도다. KB증권은 지난해 IPO 대표주관 1위(3조4345억원)를 기록했고 사상 최대어인 LG에너지솔루션 딜을 주관하기도 했다.  


선정 과정에서 전통 강자이자 빅3로 꼽히는 NH투자증권과 한국투자증권, 미래에셋증권이 모두 탈락한 것은 이례적이다. 올 들어 빅3가 시장 지위를 되찾았다는 점에서 의외의 결과다.  


올 1~8월까지 대표주관 순위(인수금 기준)를 살펴보면 미래에셋증권은 전체 1위(3226억원)를 차지했고 한국투자증권(2위, 3196억원), NH투자증권(3위, 2429억원)이 그 뒤를 이었다. 반면 KB증권은 올 들어 부진해 15위(180억원)에 머물고 있다. 공동 주관사로 뽑힌 신한투자증권은 11위(476억원), 하나증권은 5위(1639억원)를 각각 차지했다. 


◇선택은 자유, 대규모 공모전이 문제…13곳에 새 사명 요구


발행사와 KKR이 자사 이해에 맞는 주관사를 선정한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상당한 에너지가 소모되는 주관 경쟁에 너무 많은 IB들을 불러들인 것이 논란을 부추길 수 있는 문제다. 발행사는 7월 말 국내 8개사와 외국계 5개사에 RFP를 보냈다. 총 13곳이다. 결국 다수의 지원자가 헛물을 켠 셈이 됐다. 


발행사는 앞서 요청한 RFP를 통해 미래 이미지에 어울리는 새 사명 제출까지 요구한 것으로 알려진다. 더불어 ▲친환경과 디지털 사업에 대한 미래비전 ▲모기업(HD현대) 주가 변동 최소화 방안 ▲선박AS사업에 대한 우려와 대응방안 등 포괄적인 솔루션을 원했다. 일종의 아이디어 공모전을 벌인 셈이다. 


다양한 아이디어를 기대한 탓인지 발행사는 지난달 16일 입찰제안서를 마감하고 13곳 전원을 통과시켰다. 모두에게 PT를 받겠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PT 시간은 길게 주어지지 않았다. 지난달 28~29일 양일간 진행된 PT에서 회사별 발표시간은 불과 20분에 그친 것으로 전해진다. 


발행사가 PT를 마치고 3일 만에 결과를 발표했다는 점도 국내 IB들이 들러리를 선 느낌을 받는 또 다른 근거가 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IB관계자는 "공들여 PT를 준비했는데 시간이 충분히 주어지지 않아 다 보여주지 못해 아쉬웠다"며 "그런데 이렇게 특정한 곳에 쏠린 결과를 보니 허무하다"고 말했다. 이어 "우월적 지위에 있는 발행사의 요구(주관경쟁 참여)를 거부할 순 없다"며 "생각해둔 파트너가 있다면 차라리 숏리스트를 추려 진행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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