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조원 밸류(기업가치)로 공모한다해도 베팅하지 않을 것 같다.” 컬리의 올 상반기까지 실적을 확인한 뒤 나온 일부 기관투자자의 반응이다.


온라인 플랫폼 기업의 에퀴티스토리(Equity Story)는 오프라인 수요를 대거 흡수해 시장 과점사업자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우월적 시장지위에 기반해 ‘알짜’ 이익을 낸 다는 것이다. ‘성장’이 핵심이기에 초기 적자는 감수한다.


컬리는 새벽배송으로 신선식품 온라인화를 주도한 개척자다. 그런데 흑자전환을 하기도 전에 성장세가 꺾여버렸다. 2년 째 한자릿 수 성장을 하고 있다. 직전 고공성장은 코로나19가 가져다 준 착시라는 평가도 나온다. 제2의 쿠팡을 꿈궜지만 현실은 달랐다.


과점사업자 지위는 차치하고 ‘지속가능한 사업’인가에 대한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컬리 IPO에 대한 시장반응이 차가운 배경이다.



◇ 2년 평균 매출증가율 4% 그쳐…직전 폭풍성장은 펜데믹 착시


반기보고서에 따르면 컬리는 연결기준 올 상반기 매출 1조779억원에 영업손실 85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동기에 비해 매출(1조175억원)은 5.9% 늘었고, 영업손실(778억원)은 89% 가량 줄어든 수치다.



2년 연속 한자릿 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지난해에도 연간매출이 2조774억원으로 전년(2조372억원) 대비 2% 증가하는데 그쳤다. 올 상반기 성장률(5.9%)이 전년(2%)보다 개선되긴 했지만 과거 폭풍성장하던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둔화다.


컬리는 매출이 2019년 4260억원에서 2020년 9531억원, 2021년 1조5614억원, 2022년 2조372억원으로 직전까진 거의 매년 퀀텀점프를 했다. 매출증가율(전년 대비)이 2020년은 123.7%에 달했고, 2021년 63.8%, 2022년 30.5%였다. 2019~2022년까지 3년연평균 매출증가율은 72.7%다. 그러다 2023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둔화되더니 올해까지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업계에선 새벽배송 시장이 코로나19 덕에 단기팽창한 영향으로 보고 있다. 컬리가 매출이 처음 폭발적으로 늘어난 해가 펜데믹 시기였던 2020년이었고, 급격히 둔화된 해가 엔데믹 시기인 2023년이다.


코로나19 시기 때만해도 새벽배송 시장이 지속성장할 것이라는 시각이 다수였다. ‘집에서 장보기’ 등 그 전에는 몰랐던 효용을 확인한 영향이다. 하지만 막상 엔데믹을 겪고 나니 새벽배송은 명확한 성장한계를 드러냈다. 컬리 경쟁사 쓱닷컴 역시 2023년 매출(1조6784억원)이 전년 보다 3.8% 줄었고, 올 상반기 매출(8085억원)도 전년동기 대비 4.7% 감소했다.


한 기관투자자는 “비상장 펀딩 당시 가파른 성장성을 내세웠지만 문제는 그 성장이 펜데믹으로 인한 수혜라는 점을 본인들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이라며 “작년과 올 상반기 매출을 보면 이미 정체된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간 신선식품 콜드체인 물류관련 투자가 주를 이뤘지만 정작 이 분야에서 성장이 어려워진 것”이라며 “그 동안의 매출증가도 신선식품과 무관한 공산품을 덧붙여 판매한 영향이 있다”고 덧붙였다.


◇ 누적 영업손실 8000억 넘어…2~3년 내 타개책 찾아야


과점사업자에 도달하기도 전에 성장세가 꺾여 버린 상황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온라인쇼핑을 통한 식품 거래액은 40조6812억원이다. 같은 기간 컬리매출(2조372억원)은 전체 식품거래액의 5% 수준에 그친다.


그간 감수해온 적자 수익모델이 이젠 문제가 된다. 흑자전환 유인(성장)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컬리는 영업손실이 △2019년 1012억원 △2020년 1162억원 △2021년 2177억원 △2022년 2334억원 △2023년 1436억원이다. 5년(2019~2023년) 누적 영업손실이 8123억원에 이른다. 신선식품 배송과 콜드체인 물류센터 확보와 운영에 들인 돈이다.


부족자금은 재무적투자자(FI)들이 충당해줬는데 누적으로 약 1조원에 이른다. 최근 사례만 보면 2021년 말 앵커에퀴티파트너스(앵커PE)가 4조밸류에 2500억원을 투자했고, 지난해 5월 다시 앵커PE 등이 2조9000억원 밸류로 1200억원을 투입했다.


다행히 컬리는 올 들어 영업손실(상반기 85억원) 규모가 평시보다 크게 줄었다. 물류센터 투자가 일단락 된 것에 더불어 허리띠를 졸라맨 결과다. 올 상반기 판관비(3494억원)가 전년동기(3777억원)보다 7.4% 줄었다.


그럼에도 적자지속은 당연히 부담이다. FI가 수혈해준 현금이 모두 소진되면 사업을 지속하기 어렵다. 그리고 현금사정이 완전히 여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올 상반기말 현금성자산은 2207억원이다. 올 상반기말 기준 단기성차입금(685억원)을 제하면 1522억원 가량이 남는다. 여기에 연간으로 지출하는 현금이 있다. 연간 잉여현금흐름(프리캐시플로우, FCF)이 지난해 기준 마이너스(-) 1289억원이다. 이 정도 현금을 지출하면서 사업을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올해는 상반기말 기준 FCF가 플러스(+) 716억원인데 이는 매입채무가 올 상반기 급격히 늘어난데 따른 착시효과다. 매입채무는 용역이나 상품을 제공받고 값을 지불하지 않은 외상이다.


컬리는 매입채무를 연간 1400억원대 내외로 유지해왔는데 올 상반기 말 기준으로는 2266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전년 말(1495억원)보다 896억원이나 늘었다. 외상값이 늘어 일시적으로 현금이 쌓인 셈이다. 올 연말 기준으론 FCF가 다시 마이너스로 돌아설 가능성이 있다.



결국 FI들이 추가로 자금을 보충하지 않는다면 컬리는 2~3년 내에 흑자전환을 위한 자구책을 마련해야 유동성 문제를 겪지 않을 것으로 분석된다. 실적과 재무상태가 이 정도로 열악해졌기에 IPO는 감히 노려볼 수 없는 상황이라는 평가다.


앞선 기관투자자는 “컬리는 밸류를 대폭 낮추지 않은 이상 상장이 힘들 것”이라며 “아니면 조 단위 밸류에 어울리는 이익 창출력을 보여줘야 하지만 쉽지 않은 상황으로 본다”고 말했다.


컬리측은 올 실적에 대해 선방한 것으로 평가했다. 컬리 관계자는 “경기침체로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올해 성장하고 있는 곳은 쿠팡와 컬리밖에 없다”며 “수익성 관련해서도 투자 일단락으로 지난해 12월부터 EBITDA 흑자를 내고 있다”고 말했다.


IPO도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앞선 관계자는 “현금도 충분히 있고 FI들과 상장과 관련해 특별한 약정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서두르지 않아도 된다”며 “적절한 밸류로 평가받을 수 있을 때 진행할 것”이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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