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AA0, 안정적)이 신용등급 하락 이후 처음으로 공모채 수요예측에 나선다. 롯데그룹의 핵심 계열사로 그룹에 대한 투심도 대변한다는 점에서 관심이 크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말 건설계열사발 유동성위기가 불거져 홍역을 치렀고, 그 결과 올 중순 롯데케미칼을 시작으로 계열사 도미노 등급 하락이 이어졌다.


롯데케미칼은 실적과 재무 측면에선 부정적 평가를 받는다. 2년 연속 적자를 기록하고 있는데 중국발 수급악재로 향후에도 의미 있는 개선은 기대하기 힘든 분위기다. 반면 투자비 지출은 과거의 3~4배 수준을 지속할 계획이라 재무부담이 가중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AA0급 신용등급 하향 변동요인(트리거)를 터치하고 있는 상황에서의 전망이다.


◇실적 부진 속 최대 3000억 공모


롯데케미칼은 29일 1500억원 공모채 발행을 위한 수요예측을 진행한다. 만기구조는 2년물과 3년물로 나눠 각각 1000억원, 500억원을 배정했다. 희망금리밴드는 2, 3년물 모두 개별민평에 -30bp~+30bp를 가산한 수치로 제시했다. 주관사는 KB증권과 한국투자증권, 신한투자증권, 키움증권 등 5개사다.



올 6월 중순 국내 3대 신용평가사가 발행사 회사채 신용등급을 AA+(부정적)에서 AA0(안정적)으로 일제히 한 노치 하향한 이후 처음으로 발행하는 회사채다.


등급평정 이후 확인된 것은 영업손실을 이어간 2분기 실적이다. 올 2분기 매출 5조24억원에 영업손실 77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5조3178억원)은 5.9% 줄었고, 영업손실(595억원)은 29.6% 확대됐다. 올 상반기 전체로는 매출(9조9347억원)은 전년 동기에 비해 7.7% 줄었고 영업손실(1032억원)은 3424.8% 증가했다.



더불어 롯데케미칼 사업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중국 경제상황이 변했다. 중국은 지난해 코로나19로 봉쇄정책을 강도 높게 펼치다 올해부터 풀면서 리오프닝(경제활동 재개) 효과로 경제회복이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달 중국 최대 부동산 개발사 헝다그룹(에버그란데)이 미국에 파산 보호를 신청하는 등 부동산발 경제위기가 불거지며 기대감이 꺾이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중국경제성장률은 2021년 8.1%에서 2022년 봉쇄정책 영향으로 3%로 급락했다. IMF는 올 5월엔 2023년 중국 성장률이 5.2%로 회복될 것으로 전망했다. 하지만 최근 부동산 위기 이후 글로벌투자은행(IB)인 시티그룹은 종전 5.0%에서 4.7%로 낮췄고, JP모건과 바클레이스 등도 4%대로 제시했다.


◇중국, 수출국이자 경쟁국…향후 전망도 부정적


중국이 중요한 것은 롯데케미칼의 주요 수출국으로 직접적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더불어 중국은 화학소재 자급자족을 넘어 수출국으로 변모하기 위해 대대적 증설을 진행하고 있다. 중국 경기 회복이 더뎌지면 그 동안 롯데케미칼 실적 발목을 잡은 '수요둔화+공급과잉'이 계속 이어질 수 있다.


중국은 1992년 이후 한‧중 수교 이후 우리 화학기업들의 핵심 무대가 됐다. 2010년 이후 우리기업 제품이 중국 내 점유율 40% 이상을 기록하며 1위가 됐다. 중국 내수가 워낙 큰데다 우리나라와 지리적으로 가까웠던 영향이다.


롯데케미칼의 경우 주력사업이 기초소재이고, 주요 중국 수출제품도 기초소재다. 올 상반기 연결 매출(9조9347억원) 기준 기초소재가 69.5%, 첨단소재가 25.8%, 정밀화학이 9.6%, 전지소재가 2%다. 기초소재사업부문 중국 수출액은 올 상반기 1조2720억원으로 같은 기간 사업부 전체 매출(6조9036억원)의 18.4%를 차지한다.


기초소재는 경기에 민감하다. 호황기엔 캐시카우 역할을 하지만 불황기엔 적자를 안긴다. 주요 제품이 에틸렌(EL)과 프로필렌(PL) 등으로 중간재인 합성수지나 섬유, 고무를 만드는데 쓰인다. 최종적으론 자동차 부품이나 포장재, 타이어, 신발 등 범용제품의 기초원료 역할을 한다. 지갑이 얇아지면 범용제품은 소비가 줄기 쉽다.


2022년 중국이 봉쇄정책을 펴자 롯데케미칼이 직접적 타격을 입은 이유다. 주요 수출국 수요가 둔화했는데 기초소재를 만드는데 필요한 나프타 원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여파로 급등하는 악재가 겹쳤다. 수요는 줄고 원가는 높아졌다.


이에 롯데케미칼은 2022년 연결기준 매출 22조2761억원에 영업손실 7626억원을 기록했다. 전년엔 연간 영업이익이 1조5356억원에 달했는데 수직낙하했다. 그리고 올 상반기까지 영업손실(1032억원)이 이어졌는데, 기대하던 하반기 중국 경기회복 기대감이 사라진 셈이다.



신용평가 업계는 중장기 전망도 비관적으로 바라보는데 중국의 증설 탓이다. 석유화학업계에 따르면 중국 에틸렌 생산능력은 2018년 2553만톤에서 지난해 4689만톤으로 두 배 가까이 늘었다. 같은 기간 글로벌 점유율도 14.4%에서 21.7%로 7.3%포인트 상승했다. 이에 대해 블룸버그(Bloomberg)는 중국 생산능력이 2022년 말 내수수요를 넘어섰고, 2023년에는 생산이 수요의 107.6%에 이를 것이라고 전망했다.


공급과잉이 중국을 넘어 글로벌로 확장될 수 있다는 의미다. 중국 경기 둔화는 이 같은 전망을 가속화시키는 요인이 일 수 있다. 중국과 우리 기업 경쟁이 심화할 수 있다.


(자료:증권신고서)


나이스신용평가는 이번 본평가 보고서에서 "중국 산업활동 재개 등으로 수요는 향후 점진적으로 회복하겠지만, 부동산 등 내수경기 침체 등으로 개선세는 매우 약한 상황"이라며 "또 최근 중국 업체들의 증설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상당 기간 동안 비우호적인 산업환경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고 밝혔다.


◇2023~2025년까지 4조 지출 전망…하향 트리거 터치


실적 회복이 요원한 상황에서 투자로 인한 지출은 앞으로도 확대된다. 재무상태가 추가로 악화할 가능성이 있다.


롯데케미칼은 약점이 된 기초소재 의존도를 줄이기 위해 거액을 쏟아 부어 왔다. M&A(인수합병) 빅딜이 있었다. 2차전지 소재사업 진출을 위해 롯데에너지머티리얼즈(옛 일진머티리얼즈)를 올 3월 2조430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유상증자로 1조2155억원을 마련하고 나머지(약 1조3000억원)는 차입(인수금융)으로 충당했다.


롯데케미칼 투자계획(자료:한국기업평가)


설비투자비(CAPEX)도 2017~2021년 사이엔 1조원 내외였지만 지난해는 2조6000억원으로 껑충뛰었다. 올해도 상반기에만 1조4727억원을 썼다. 공개한 투자계획에 따르면 2023~2025년까지 연평균 4조원 가량 지출이 예상된다.


영업창출력을 크게 뛰어넘는 규모로 지난해부터 투자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예정하고 있다. 2021년 영업활동현금흐름이 1조5352억원이었다. 호황기 버는 규모로도 향후 투자액(4조원)을 감당할 수 없다. 그러다 지난해 영업활동현금흐름이 마이너스(102억원)가 됐고 대규모 차입으로 부족분을 충당하는 구조가 됐다. 신용등급 강등이 이뤄진 이유다.



롯데케미칼 총차입금은 2021년 말 3조6658억원에서 올 상반기 말 8조7252억원으로 급증했다. 공교롭게도 글로벌금리 인상기 차입을 늘려 이자부담이 커졌다. 2021년 이자비용은 877억원이었지만 지난해 1599억원이 됐고, 올해는 상반기에만 1676억원으로 전년 연간치(1599억원)를 상회했다.


롯데케미칼은 2분기 부진한 실적 영향으로 새롭게 설정된 AA0급 기준 신용등급 하향 트리거도 이미 터치하고 있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까진 순차입금/EBITDA 배수가 1를 초과할 경우를 트리거로 제시했지만 올 중순 등급하향과 함께 3.5배 초과로 완화했다. 롯데케미칼은 올 2분기말 순차입금/EBITDA 가 4.85배로 기준(3.5배)을 1.35배포인트 상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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