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두는 지난달 기관수요예측에서 300대 1 수준의 경쟁률을 보였다. 기대 이하 결과라는 평가가 나왔다. 상반기 최대어라는 상징성에 반도체 컨트롤러 시장 특수로 성장 기대감이 큰 곳이었다. '핫'딜이 될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여기에도 큰 변수가 있었다. 일부 기관이 수요예측 마지막날 부정적 여론을 형성하는 보고서를 냈다. 본래 직전까지 준수한 경쟁률을 보였는데 갑자기 썰물이 빠지듯 청약 철회가 이어졌다. 그 결과가 300대 1 수준이다.


일각에선 우리 자본시장의 밑천이 드러난 현상으로 해석한다. 딜에 대해 스스로 평가할 수 있는 기관의 수가 그만큼 적다는 의미다. 흥행과 비흥행 사이에 상당한 허수가 존재한다. 달리보면 파두의 경쟁률은 허수가 걷힌 수치다. 재해석이 필요하다는 것이 발행사 등의 주장이다.


◇파인밸류 "제한적 밸류매력, 신중한 참여", 적정 주가도 하향


파두는 지난 7월 24일부터 25일까지 양일간 기관 수요예측을 진행했다. 기관 대상 모집주식수는 433만7500주였다. 참여한 기관수는 1082곳, 신청물량은 15억7407만5000주로 최종 경쟁률이 362.9대 1이었다. 공모가 희망밴드는 2만6000원~3만1000원이었데 신청물량의 90.39%가 3만1000원 이상 구간에 베팅됐다. 그 결과 공모가는 3만1000원으로 확정됐다.


우여곡절이 있는 결과물이었다. 파인밸류자산운용(이하 파인밸류)이 수요예측 마지막날인 25일 오후 3시께 파두에 대한 부정적 보고서(수요예측 투자 전력 리포트)를 냈다. 파인밸류자산운용은 삼정KPMG 회계법인 출신 최호열 대표가 2006년 설립한 자산운용사다. 본래 기관들의 IPO 공모주 투자를 돕는 자문사로 시작했는데 2015년 운용사로 전환해 투자와 자문을 병행해 왔다. 자문보고서는 계약을 맺은 기관들을 대상으로 공급한다.


해당 보고서 핵심은 '파인밸류 View'다. "SSD컨트롤러 내 시장점유율 상승은 기대되나, 제한적인 밸류 매력을 감안할 때 신중한 참여전략이 유효하다"고 기재했다. 투자 세부지침도 안내했는데 역시 보수적이었다. 적정주가를 3만1000원이라고 썼다. 적정주가가 공모가 희망밴드 상단(3만1000원)이라고 봤다는 것은 상장 후 주가 상승여력이 제한적이라는 의미다.


파인밸류자산운용이 파두 수요예측 마지막날 배포한 보고서(사진:업계)


더불어 의무보유확약도 걸지 말도록(미확약) 안내했다. 의무보유확약은 기관이 상장한 이후 주식을 약속한 기간동안 팔지 않기로 하는 약속이다. 변동성에 대한 리스크를 짊어지는 대신 보다 많은 물량을 배정받을 수 있다. 이 때문에 확약 비중이 높은 딜일수록 흥행한 것으로 평가된다. 파인밸류는 확약에 있어서도 보수적 전략을 권고한 셈이다. 이와 관련해 상장한 이후 주식 보유전략에 대해서도 '전량 매도' 전략이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파인밸류는 수요예측 직전인 7월 21에는 긍정적 리포트를 냈다. '입증된 반도체 설계 능력, 성장 초입 구간 진입'이라는 제목과 함께 적정주가를 4만원으로 제시했다. 희망밴드 상단(3만1000원) 보다도 30% 가량(9000원) 비싼 가격이다. 그런데 4일 만에 정반대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냈다.


파인밸류자산운용이 21일 배포한 파두 보고서(사진:업계)


이와 관련 파인밸류측은 앞서 언급된 보고서(21일자)는 공식 문서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파인밸류 관계자는 "당사는 자문 유료고객들을 대상으로 리포트를 발송하는데 해당(21일자) 리포트는 유료고객들에게 발송한 자료가 아니며, 발송했던 공식리포트의 적정 주가 또한 4만원이 아닌 3만1000원으로 기재했다"며 "더불어 3만1000원은 공모가 희망밴드 상단 가격이기에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800대 1서 급강하…일부 LP, WCP 악몽 떠올려


파장은 상당했다. 수요예측 마지막 날 오후는 기관들이 가장 예민할 때다. 소위 정보전을 통한 '눈치싸움'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다른 기관들의 분위기를 살펴보면서 신청 가격과 물량을 써내거나 정정한다. 예상한 것보다 경쟁이 심하면 물량을 거의 받지 못하고, 반대의 경우엔 물량 폭탄을 맞을 수 있다.


이 때 부정적 보고서가 나온 셈이다. 파인밸류는 계약한 기관들에게만 보고서를 공유했지만 더 큰 범위로 퍼졌다. 공모주펀드에 자금을 대고 있는 연기금과 같은 LP(limited partner)들에게도 전달돼 불안감이 고조됐다는 후문이다. 일부 LP는 작년 9월에 공모한 빅딜이었던 WCP(더블유씨피) 사례를 떠올려 보수적 투자를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WCP는 수요예측 저조로 기관들이 물량폭탄을 맞은 경우였다. 총 7200억원을 공모했는데 기관 경쟁률이 33.28대 1에 그쳤다. 공모가 희망밴드(8만~10만)를 밑도는 6만원으로 공모가를 정했음에도 상장 첫날 종가(4만1700원)가 공모가를 크게 하회했다. 공모 과정에서 저조한 투심이 확인된 탓이다.


그 결과 파두는 보고서가 나오기 직전까지 만해도 800대 1 수준이었던 경쟁률이 최종 300대 1수준으로까지 빠졌다는 것이 주관사단 관계자들의 이야기다. 기관들은 수요예측 마감시간 전까진 신청한 물량을 정정하거나 취소할 수 있다.


◇발행사측 "실수요로도 선방"…글로벌 대형 기관 투자 유지


업계에선 파인밸류의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을 실감하면서도 정상적인 현상은 아니라고 평가한다. 기관들은 각각이 고객(LP 등)의 수익실현을 위해 공모구조가 적절한지 분석할 수 있어야 하고, 시장 상황이나 분위기에 맞춰 최적의 전략을 구사해야 한다. 그런 기관이 많을수록 수요예측제도의 취지인 '가격 발견 기능'이 제대로 구현된다.


업계 관계자는 "보고서 하나로 투심이 이 정도로 출렁였다는 것은 그만큼 소신을 갖지 못한 기관들이 많다는 의미"라며 "파두 결과를 떠나 자본시장 관점에서 기관이 해야 할 역할에 대해 되짚어 볼 문제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발행사와 주관사 측은 악재를 감안하면 상당히 선방한 결과로 보고 있다. 실수요만으로 300대 1 수준 경쟁률을 낸 것이기 때문이다. 전체 공모액이 1937억원인 딜 사이즈를 감안하면 저조한 수치도 아니라는 평가다. 기관 공모액만 1344억원이다. 올 들어 7월까지 총 48건의 공모(파두 포함)가 있었고, 평균 기관공모액은 298억원이다. 파두는 평균의 4.5배를 모았다.


실제 기관 공모주 신청규모(금액기준)를 직전 흥행한 다른 딜과 비교해 보면 파두가 크게 앞선다. 파두 기관 신청물량(15억7407만5000주)에 공모가(3만1000원)를 곱하면 규모가 48조7963억원에 이른다.


올해 최대 경쟁률을 기록한 IPO는 엠아이큐브솔루션으로 1889대 1이었다. 수요예측일이 파두 직전인 올 7월 20~21일이었다. 기관 신청규모(14억8562만5000주)에 공모가(1만2000원)를 곱하면 규모가 17조8275억원이 된다.


파두는 기관이 신청한 의무보유확약 비중도 상당하다. 기관 배정물량의 32.48%가 확약돼 있는데 길게 설정한 기관이 과반이다. 6개월이 21.01%로 가장 많고 3개월 4.86%, 1개월 2.92%, 15일은 3.69%다.



글로벌 대형기관이 투자기조를 유지하며 신뢰를 보인 결과라는 설명이다. 앞선 관계자는 "청약에 아랍에미리에이트(UAE)의 글로벌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ADIA)과 말레이시아 연기금, 국내 대형 자산운용사가 거의 빠짐없이 참여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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