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급은 상장한 후 주가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다. 살려는 사람보다 팔려는 사람이 적어야 주가에 긍정적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해외 기관투자자들에게 특혜를 줘 '수급 개선'을 제한시켰다는 평가를 받는다. 해외기관은 청약비중이 전체의 10%에 그치는데, 최종배정액은 전체의 40%에 달했다. 게다가 해외기관은 배정받은 물량 기준 의무보유확약(이하 확약)이 제로에 가깝다. 해외기관 중심으로 '단타'를 허용해준 셈이다.


수급을 개선시킨건 국내기관들이다. 배정물량기준 92%가 확약돼 있다. 덕분에 상장 직후 유통가능물량 비중이 16%에서 10%로 크게 내려갔다.


◇ 해외기관 배정물량 99.9% 미확약...수급 개선은 국내기관 몫


HD현대마린솔루션은 30일 증권발행실적보고서를 통해 의무보유확약 기간별 국내외기관 배정액을 공개했다. 공모가를 희망밴드 상단(8만3400원)으로 확정하면서 전체 공모액은 7422억원이 됐다. 이중 기관 배정액은 전체의 55%인 4082억원이다.


기관배정액(4082억원)의 40%인 1633억원은 해외기관이 가져갔다. 나머지 60%인 2449억원이 국내 기관 몫이다. 해외기관은 적게 청약했음에도 많은 물량을 받았다. 앞서 진행한 기관수요예측에서 해외기관은 217곳이 1억561만8800주를 신청했다. 전체 신청물량의 10.7%에 그쳤다. 배정비중(40%)이 신청비중(10.7%)의 4배다.



국내기관은 1805곳이 8억7889만3000주를 신청했다. 전체 신청물량의 89%를 차지했다. 하지만 배정비중(60%)은 신청비중(89%)에 크게 못미쳤다.


특히 해외기관은 수요예측을 할 때 대다수 확약 하지 않았다. 신청물량의 93.8%가 미확약이었다. 확약은 15일~6개월 단위로 걸 수 있는데 기간이 길수록 배정에 유리하다. 밸류(기업가치)가 시장친화적이고 중장기 펀더멘털이 우수할 때 확약이 많이 걸린다. 공모주를 장기보유해도 수익을 낼 수 있다는 확신에 따른 것이다. 투심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있는 지표다. 그런데 HD현대마린솔루션은 해외기관이 단타용 공모주로 평가했다.


그럼에도 HD현대마린솔루션은 확약 취지가 무색하게 해외기관 중심으로 대거 배정했다. 배정물량(1633억원) 중에서 확약물량은 0.01%(800주, 6600만원) 그친다. 해외기관은 대다수 상장일에 공모주를 팔 수 있다.


국내기관은 확약기간이 길수록 배정을 많이 받았다. 배정물량(2449억원) 중 49.8%가 6개월, 35.4%가 3개월, 6.5%가 1개월, 0.2%가 15일 확약을 했다. 국내기관 내 미확약비중은 8%로 해외기관(99.9%)과 비교해 배정물량이 크게 적다.


물량에서나 확약률에서나 해외기관에 큰 특혜를 준 것으로 보이는 결과다. 이탓에 더 좋아질 수 있었던 수급은 제한됐다. 미확약이 대다수인 해외기관이 너무 많은 물량을 가져갔기 때문이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상장예정주식수가 4445만주인데 유통가능주식수는 전량 공모주주 소유분(712만주)으로 전체의 16%였다.


그런데 국내기관 확약물량(270만2120주)이 유통가능주식수에서 제외되면서 최종 유통가능주식수(441만7880만주)는 전체의 9.9%로 직전(16%)보다 6%포인트 가량 하락하게 됐다. 국내기관에게 더 많이 배정했을 경우 유통가능주식 비중은 현재(9.9%)보다 더 낮아질 수 있었다.


◇ 해외기관 우대 왜? KKR 블록딜 고려 추정


사실 해외기관 우대논란은 자본시장에서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싱가포르투자청(GIC)나 블랙록(BlackRock) 등으로 대변되는 해외 큰손들은 국내 IPO 뿐 아니라 블록딜(Block deal) 등 다양한 딜에 참여한다. 주관사 입장에선 이들을 우대해야 향후 잠재딜에도 고객으로 참여시킬 수 있다. 블록딜의 경우 업무 난이도는 높지 않은데 수수료는 수억원에서 수십억원에 이른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가령 GIC가 셀트리온 지분 10%를 보유하고 있고 이중 5%를 블록딜로 처분하기를 원할 때 거래실적이 있는 주관사를 택할 것"이라며 "이런 딜들이 연중 수십건 나오기 때문에 수수료확보 측면에서 주관사들은 해외 큰손들을 평소 우대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HD현대마린솔루션은 그 정도가 다른 빅딜보다 심했다는 설명이다. 실제 직전 흥행한 빅딜인 두산로보틱스는 해외기관 배정분이 전체의 35%로 HD현대마린솔루션(40%)보다 낮았다. 더불어 해외기관배정분의 14.32%가 확약물량이었다. 해외기관에 특혜를 상대적으로 덜 줬다.


업계에선 HD현대마린솔루션 재무적투자자(FI)인 KKR(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 영향이 있는 것으로 본다. 이번 IPO 공모구조는 50% 신주모집, 50% 구주매출이다. 구주매출은 전량 KKR 지분으로 3711억원 규모다.


그런데 KKR은 구주매출을 하고도 잔여지분이 상당하다. 상장 후 기준 지분율이 24.2%다. 공모가 기준으로 8965억원에 이르는 물량으로, 구주매출분의 두 배 이상이다. 잔여지분에 대해선 6개월 보호예수를 걸어뒀다.


반년 후 잔여지분을 원활히 엑시트하기 위해선 해외큰손들의 도움이 필요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앞선 관계자는 "공모주 시장이 과열돼 있기 때문에 이번 IPO로 해외기관들은 단타로 상당한 차익을 실현할 가능성이 높다"며 "이는 향후 KKR이 블록딜 등으로 잔여지분을 정리할 때 해외큰손들에게 도움(매입)을 청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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