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코스닥 최대어 이노스페이스가 수요예측 흥행에도 공모가를 시장친화적 가격으로 확정했다. 수요예측에서 기관 10곳 중 7곳이 희망밴드 상단을 초과(이하 상초)한 가격대에 베팅했지만 이노스페이스는 '상단'가격에 만족했다.


공모주시장이 과열된 이후 자진해 공모가 눈높이를 낮춘 발행사는 코스피 최대어인 HD현대마린솔루션에 이어 이노스페이스가 두 번째다. 코스닥에선 첫 선례를 만들었다. 최대어 다운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왜곡된 시장이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이정표 역할을 할 것이란 관측이다.


◇ 기관 상초구간에 71% 베팅


이노스페이스는 19일 오후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확정 공모가를 4만3300원으로 정한 사실을 공개했다. 4만3300원은 공모가 희망밴드(3만6400~4만3300원) 상단 가격이다. 이로써 공모액도 575억원으로 최종 확정됐다.


수요예측이 흥행했음에도 자진해 상초를 택하지 않고 공모가를 낮춘 케이스다. 이노스페이스는 기관 대상으로 총 95만3200주를 모집했다. 전체 공모주식(133만주)의 71.7% 수준이다. 수요예측에서 5억7084만1900주주가 신청돼 경쟁률 598.8대 1을 기록했다. 공모사이즈가 중형임을 감안하면 상당히 흥행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참여기관수도 2059곳으로 흥행한 딜의 기본요건(2000곳 이상)을 충족했다.


앞서 흥행실패 사례로 주목받은 그리드위즈는 공모액이 560억원이었는데 경쟁률이 124.6대 1에 그쳤고, 참여기관은 1098곳으로 이노스페이스의 절반 수준이었다.


수요예측 결과는 질적으로도 우수했다. 신청물량의 71.4%가 상초 구간에 베팅됐다. △세부적으로 희망밴드 상단(4만3300원)보다 훨씬 비싼가격대인 5만5000원초과 구간에 16.1%가 신청됐고 △5만5000원이하~5만원초과 대에 10.9% △5만원이하~4만6000원초과 대에 35.1% △4만6000원이하~4만3300원초과 대가 9.3%였다. 상단구간은 25.3%였다. 상단 이상 베팅비중이 96.7%였다.


다만 기관들은 의무보유확약은 거의 걸지 않았다. 신청물량중 98%가 미확약이다.



◇ 김수종 대표가 친화적가격 주도…코스닥 최대어도 과열진정 동참


직전까지 코스닥 딜들은 이노스페이스 정도로 수요예측이 흥행하면 어김없이 공모가를 상초로 정했다. 올 들어 현재(19일)까지 총 24개 기업이 상장했는데 이중 HD현대마린솔루션과 그리드위즈를 제외한 22개 기업이 모두 상초를 택했다. 22개기업 상초 상승률은 평균 22%에 달한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공모가를 '상초'로 정한 경우는 드물었다. 자본시장 역사에서 손꼽을 정도로 수요예측이 흥행하고 시장이 인정하는 펀더멘털을 갖춘 곳이어야 결정할 수 있는 분위기였다.


반면 올 들어선 시장과열로 인해 '상초'가 당연시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상장일에 주가가 50~300%까지 치솟는 기현상이 이어지자 기관들도 '단타'를 노리기 시작했다. 상초 베팅을 해서 조금이라도 주식배정을 많이 받는 걸 노렸다. 이른 바 기관에게 맡겨진 '가격결정기능'이 상실됐다.



그런 와중에 올 5월 상장한 HD현대마린솔루션이 우수한 수요예측 결과에도 자진해 공모가를 '상단'가격으로 정했다. 대기업 계열사라는 시장지위와 평판을 고려한 결정이다. 코스피 최대어 답게 과열을 일부 진정시키는데 앞장섰다.


물론 상초 행렬은 HD현대마린솔루션 이후로도 이어졌다. 그리고 올 6월 14일 상장한 그리드위즈가 두 번째로 공모가를 '상단'로 정했는데 배경은 달랐다. 고평가 논란으로 수요예측 흥행에 실패해 어쩔 수 없이 상초를 포기한 경우다.


이노스페이스는 코스닥에서도 자진해 공모가를 낮춘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노스페이스 공모액(575억원)은 공모가 희망밴드 상단가격 기준으론 올 코스닥 딜 중에서 가장 크다. 올 초 코스닥에 상장한 현대힘스 최종 공모액(635억원)이 이노스페이스보다 크지만 상초 영향이었다. 희망밴드 상단가 기준으론 현대힘스 공모액(548억원)이 이노스페이스보다 작다.


특히 업계 일각에선 그리드위즈 상장 이후 주가가 예상보다 나쁘지 않다는 점에서, 이노스페이스가 이를 참고해 '상초' 결정에 나설 것이란 관측을 했다. 그리드위즈 상장일 시초가는 6만600원으로 공모가(4만원)보다 51.5% 높은 가격으로 형성됐었다. 이후 하락을 거듭했지만 상장일 종가(4만9500원)는 공모가보다 23.8% 높은 가격으로 마무리됐다.


이달 19일 종가(4만4250원)도 전일보다 낮아졌지만 공모가(4만원)보다는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고평가 논란이 있었음에도 공모주주들이 수익을 내고 탈출할 수 있는 시간은 벌어준 상황이다.


이노스페이스는 이 같은 경과를 모두 지켜보고 18~19일 양일에 걸쳐 확정 공모가를 주관사와 논의했다. 그리드위즈의 양호한 분위기와 무관하게 시장친화적 전략을 고수했다. 코스닥서도 최대어가 품격을 보여줬다는 평가가 나온 배경이다.


한 자산운용사 관계자는 "그리드위즈가 상장 이후 예상보다 선방하면서 이노스페이스가 상초를 결정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는데 반대로 나와 놀랐다"며 "올 코스닥 최대어로 시장에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한다"고 말했다.


오너이자 창업주인 김수종 이노스페이스 대표 주도로 결정된 사안으로 알려졌다. IB관계자는 "이노스페이스는 상초를 수용할 수 있는 수요예측 성과를 냈지만 김수종 대표가 시장친화적 가격을 택하자는 의견을 내 상단으로 확정했다"며 "코스닥서도 최대어가 과열해소에 기여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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