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말 시작된 기업공개(IPO) 시장 과열은 '단타' 붐을 일으켰다. 상장일에 주가가 공모가 대비 50~200% 폭등하니 발행사 펀더멘털이나 공모가 적정성에 대한 분석은 무용지물이 됐다. '묻지마' 투자를 한 후 상장일 시초가에 팔면 그만인 시장이 됐다.


중장기적으로 기업에 좋지 않은 현상이다. 투자자들은 단타로 차익을 낸 후 발행사를 쳐다보지도 않는다. 고평가된 주식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애초 기업에 대한 스터디도 깊지 않았다. 이른 바 '비인기 종목'으로 낙인찍힐 수 있다. 그 때부턴 발행사가 주가 제고를 하기 힘들어진다.


올 첫 코스피 IPO 주자 에이피알은 현 분위기와 대척점에 있다. 기관들이 상장 후에도 주식을 매수 하고 있는 얼마 안 되는 종목 중 하나다. 역대급 펀더멘털을 갖춘 반면 주가는 재무적투자자(FI)들의 자금회수(엑시트) 영향으로 저평가가 돼 있기 때문이다.


에이피알은 상장 당시 분기를 거듭할 때마다 계단식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됐다. 실적과 연동해 주가도 점진적으로 높아질 것이란 믿음이 있었다. 그리고 최근 예상이 적중했다. 1분기 실적발표와 함께 주가도 올랐다. 상장 수개월뒤 거품이 꺼지며 주가가 공모가를 밑도는 발행사가 속출하고 있지만 에이피알은 수익률이 20%에 가깝다. 투심지속과 호실적이 만들어 낸 결과다. 기관들은 연말까지 비슷한 흐름이 이어질 것으로 기대한다.


◇ 1분기 20%대 매출 고성장 지속…뷰티디바이스 개척 효과


에이피알은 이달 2일 올 1분기 연결기준 매출 1489억원, 영업이익 278억원을 기록했다고 잠정실적을 공시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1222억원)은 21.9%, 영업이익(232억원)은 19.7% 늘어난 수치다. 영업이익률은 18.6%로 전년 동기(19%)와 비슷했다.



올 2월 27일 코스피에 상장한 이후 처음으로 공개한 분기실적이다. 계단식성장 수준의 호실적을 입증했다. 신사업인 뷰티디바이스와 기존사업 화장품이 서로 시너지를 내며 모두 호조를 보인 덕이다. 뷰티디바이스 매출은 올 1분기 667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30%, 화장품은 654억원으로 같은 기간 36.6%늘었다.


뷰티디바이스 브랜드는 '메디큐브 에이지알(AGE-R)'이다. 국내외 개인용 피부미용 기기시장을 개화한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병원에서 비싸게 받던 피부시술을 집에서 저렴히 구현할 수 있게 해주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2021년 초 출시한지 2년만인 작년말 누적판매대수가 168만대에 달했다.


특히 에이피알은 에이지알을 판매할 때 화장품 브랜드를 함께 사면 할인해 주는 방식을 취하고 있다. 디바이스 뿐 아니라 화장품까지 모두 고공성장한 배경이다. 신사업이 기존사업 성장성을 돕는다.


1분기 실적 하이라이트는 미국매출에 있다. 미국은 세계 최대 뷰티시장 중 하나로 성장성이 무한하다. 에이피알 중장기 성장과 직결된 사업이라 공모 당시 기관투자자들이 가장 주목했었는데 올 1분기 고무적 성과를 냈다.



미국 매출이 248억원으로 전년 동기(84억원)에 비해 196.3% 폭증했다. 미국시장에서 1분기는 비수기다. 블랙프라이데이가 있는 4분기에 소비재 매출이 쏠리는 경향이 크다. 에이피알 올 1분기 미국매출(248억원)은 작년 4분기(299억원)에 못지않을 정도로 크다. 그 만큼 지속 성장중이라는 의미다. 올 미국 성수기(4분기) 매출이 또 다시 큰 폭으로 뛸 것이란 기대를 낳는다.


에이피알은 공모 당시 올 IPO 중에서 펀더멘털로는 '톱'이라는 평가가 잇따랐는데, 올해 뿐 아니라 지난 수년간 보여준 고공성장 덕이다. 전체매출이 2019년 1590억원에서 2020년 2190억원, 2021년 2591억원, 2022년 3977억원으로 늘었다. 3년간(2019~2022년) 연평균 매출증가율이 36.5%이었다.


◇ 3개월 만에 공모주 수익률 19%…다른 상장사 7곳은 손해


다만 상장 직후 주가는 펀더멘털을 감안하면 기대엔 못 미쳤다. 공모가가 25만원이었는데 상장일(2월27일) 시초가는 44만5000원으로 공모가 대비 수익률이 78.2%, 상장일 종가(31만7500만원) 수익률은 27%였다.


과열장 단초역할을 한 케이엔에스(2023년 12월 6일) 이후 에이피알 직전까지 13건의 IPO가 있었는데 상장일 시초가 평균 수익률(공모가 대비)은 204.5%, 종가 평균 수익률(176.3%)였다. 에이피알 수익률은 평균치와 비교하면 크게 낮았다. 게다가 에이피알은 상장 한달여 만인 올 4월 11일엔 주가가 21만원대로까지 낮아져 공모가(25만원)를 하회했다.



FI 엑시트 탓이었다. 상장일 유통가능물량 비중이 36.85%였는데, 대다수 FI 보유물량(32.85%)이었고, 공모주주는 4%에 그쳤다. 게다가 FI 보호예수 물량이 향후 시장에 더 풀리는 구조였다. 상장 1개월 뒤엔 유통비중이 11.53%포인트, 2개월뒤엔 11.68%포인트 더해졌었다. 누적유통물량비중은 상장일 36.85%에서 1개월뒤 48.38%, 2개월뒤 60.06%까지 높아진다.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했던 직접적 이유다. 그런데 일부 공모주 기관투자자 입장에선 저평가 매수기회로 여겨졌다. 시장과열로 기관수요예측 당시엔 배정받은 주식수가 많지 않아 장중 매수를 했다. 펀더멘털에 대한 확신이 컸기 때문에 단행한 후속 투자다. 다른 IPO들이 '단타'로 인해 관심에서 멀어진 반면 에이피알은 투심이 지속됐다.


한 기관투자자는 "시장 과열이 시작된 이후 상장한 기업이 10곳이라면 9곳은 매도 후 쳐다보지도 않았다"며 "모두 공모가가 희망밴드를 크게 초과해 과대평가된 곳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반면 에이피알은 FI 탓에 저평가된 곳으로 상장 후에도 지속 관심을 두다가 장중에 매수한 곳으로 지금도 보유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투심지속 덕분에 에이피알은 1분기 실적 발표 전후로 주가가 저점(21만원) 대비 크게 올라있다. 이달 3일 종가가 29만7000원으로 공모가(25만원)에 비해선 18.8%, 저점(21만원)과 비교해 41.4% 상승했다.


에이피알 4~5월 주가 및 거래량(사진:한국거래소)



일부 기관들은 당장 2분기 실적과 주가에 대해서도 큰 기대를 하고 있다. 올 2월에 미국런칭한 에이지알 신제품인 부스터프로 판매가 2분기에 본격화될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부스터프로는 7번째 제품으로 직전 시리즈의 6가지 기능을 집약한 제품이다.


앞선 관계자는 "2분기 실적 발표를 전후로 주가 움직임이 있을 것으로 보는데 우리는 40만원 내외를 기대하고 있다"며 "에이피알은 개인용 뷰티미용기기 선두주자라 주가수익비율 30배까지 인정할 수 있는데, 올해 예상순이익(1100억원) 기준 PER은 현재 20배 수준이라 여전히 저평가 상태"라고 말했다.


FI 오버행(대규모 매각물량 출회) 이슈가 상당 수 해소된 것도 향후 주가엔 긍정적이다. FI 2개월 보호예수 물량이 지난 4월 말 이미 풀려 현재(5월 초) 영향을 주고 있는데도 주가가 오르고 있다.


다른 발행사들은 비인기 종목이 돼가는 곳이 늘고 있다. 작년 말 과열장이 된 이후로 이달 민테크까지 총 18곳이 상장했는데 주가가 공모가를 하회하는 기업이 7곳으로 늘었다. 이달 3일 종가 기준으로 공모가 대비 주가 손해율이 가장 높은 곳은 포스뱅크로 34.3%다. 이어 블루엠텍이 30.3%, 스튜디오삼익 28.8%, 오상헬스케어 26.9%, 이에이트 18.4%, HB인벤스트먼트가 16.3%, 케이웨더가 13.4%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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