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는 올해 국내 장비사중 처음으로 세계 10대 반도체장비사(테크인사이츠 선정)로 꼽혔다. 반도체는 세계 1위지만 장비는 외국산에 의존했던 한국이다. 수십년만에 드디어 글로벌적으로 인정받는 장비사가 한국서 나왔다.


한미반도체 인지도를 세계적으로 끌어올린 핵심소재는 단연 TC본더다. 국내외 증시에서 가장 핫한 AI(인공지능)용 반도체 HBM을 만드는 장비다. '한미반도체(TC본더)→SK하이닉스(HBM)→엔비디아(GPU)로 이어지는 밸류체인 한축을 담당하는데, 독점공급이라는 강력한 지위에 있다. 한미반도체가 HBM용 TC본더 세계 1위다.


하지만 1위는 곧잘 견제의 대상이 된다. 고객사는 벤더다변화가 유리하고, 경쟁사도 맛있는 밥상에 손을 얹고 싶다. 이들은 1위의 강점보단 약점을 더 부각시킨다. HBM 시장 공동개척이라는 한미반도체가 이룬 성과는 이해관계에 의해 뒷전이 된다.


현재 한미반도체의 상황이다. 벤더다변화 추진설이 다각적으로 나오고 있다. 다만 전문가가 보기엔 한미반도체 경쟁력이 여전히 독보적이다. 일상적 다변화시도에 가깝다는 분석이다.


◇ 한화정밀기계 구버전으로 테스트, 양산 퀄 미완


최근 복수의 언론은 한화정밀기계가 이달 중으로 SK하이닉스에 HBM 제조용 TC본더 장비 두 대를 납품하기로 했다고 보도했다.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 외에 TC본더 장비를 공급받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를 두고 '한미반도체 독주시대가 끝났다'거나 '한화와 격돌이 시작됐다'는 표현도 나오고 있다.


한미반도체 듀얼TC 본더(자료:한미반도체)


정말 벤더다변화가 현실화된 것이라면 한미반도체 입장에선 큰 타격이 된다. AI반도체 최선호주로 보고 주식을 산 투자자도 마찬가지다. 그렇기 때문에 구체적 팩트에 입각해 사안을 중립적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 시각이다. 그리고 현재는 벤더다변화를 언급하기 이른 단계다.


전자업계에 따르면 SK하이닉스가 한화정밀기계에 주문한 것은 최신 모델인 HBM3E가 아닌 직전 구버전인 HBM3용으로 파악된다. HBM3용임에도 양산 퀄 테스트를 최종 통과한 상태가 아닌 것으로 알려졌다. 이른 바 'JDP (Joint Development Process)'를 진행하기 위해 납품받은 건이다. JDP는 데모 테스트라인에 장비를 넣고 여러 가지 검증을 하는 단계다. 여기서 커스터마이징과 함께 조건을 조율하기도 한다. 이에 보통 8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소요되는 장기프로젝트다. 양산용 공급계약과는 거리가 멀다.


IT전문가인 강용운 인포마켓 대표는 최근 자신의 유튜브 방송에서 "보도를 보면 한화정밀기계가 당장 공급을 할 것 같은 오인을 주고 있는데 실제로는 여러 가지 테스트를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100가지 항목이 있다고 하면 모든 항목을 다 통과해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어 "한마디로 양산성 검증이란게 그렇게 쉽지 않다"고 덧붙였다.


강 대표는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으로 기자(매일경제 증권부) 생활을 하다 하나증권에서 20년간 트레이더로 일했다. 반도체 관련 핵심논문을 꿰고 있을 정도로 기술에 해박하고, 기업탐방을 통해 최신 트렌드에도 밝다.


◇ ASMPT은 진동제어 숙제, 한미반도체에 밀린 이유


싱가포르장비사인 ASMPT 공급망 진입설도 검증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ASMPT는 세계적 장비사인 네덜란드 ASM의 자회사로 TC본더를 주로 만들어 왔다. ASMPT는 올 하반기 한미반도체와 함께 최신 제품(12단 HBM3E) 대응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ASMPT는 일찌감치 SK하이닉스 공급사에 포함되지 못했던 이유가 있다. 일반적으로 반도체 장비는 생산성과 정밀도, 크기가 기술력의 척도로 평가된다. 이중 한미반도체는 진동제어기술(Anti Vibration Technology)에 기반해 정밀도에서 크게 우위를 보여 HBM공급사로 선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서도 강 대표는 "정밀도를 높이려면 진동이 완벽하게 제어돼야 하는데 (ASMPT는) 그 부분이 약해 예전에 SK하이닉스가 한미반도체를 택한 것"이라며 "한미반도체가 진동제어를 하기 위해 갖춰 놓은 설비규모는 동양 최대"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SK하이닉스가 벤더다변화를 시도하는 것은 JDP 진행으로 보면 팩트다. 다만 한화정밀기계나 ASMPT 공급 본격화는 검증이 더 필요하고, 검증을 하는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경쟁사 장비는 양산이 불투명한 단계인데 마치 공급이 임박한 것처럼 표현되고 있다"며 "HBM용 TC본더 글로벌 1위이자 독점공급사인 한미반도체를 견제하기 위한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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