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반도체는 코스피 시장에서 가장 핫한 종목 중 하나다. 작년 4월 2만원대였던 주가가 1년만에 14만원대로 무려 7배로 올랐다. 5년전인 2019년 4월(8000원대)과 비교하면 16배로 껑충 뛰었다.


글로벌 메모리반도체 게임체인저라 불리는 AI(인공지능)칩 HBM(High Bandwidth Memory) 제조장비를 독점공급하며 글로벌적인 투심을 얻고 있는 것이 직접적인 이유다. 그런데 숨은 비결도 있다. 한미반도체가 오랜 기간 묵묵히 추진해온 주주환원정책이다.


올해로 5번째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 누적 소각규모가 900억원이 넘는다. 회삿돈을 소진해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가치를 높이는 일이다. 덕분에 자기자본이익률(ROE)이 50%가 넘는데, 내로라하는 글로벌기업들 수준이다. 배당에도 적극적이라 지난해까지 10년간 약 1700억원을 주주들에게 나눠줬다.


◇ 시가로 470억 규모 소각…6년전부터 진행, 진정성있는 '환원'


한미반도체는 18일 공시를 통해 자사주 34만5668주를 이달 중에 소각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전체 발행주식수(9733만9302주)의 0.35% 비중이다. 소각물량은 취득가(장부가액) 기준으론 200억원 상당이다. 최근 시가(4월 17일 종가) 기준으론 471억원 상당이다. 한미반도체는 지난해 10월부터 이달 중순까지 장내에서 자사주를 매입한 바 있는데 8개월새 주가가 크게 오르며 현 자사주 가치가 취득가를 크게 상회하게 됐다.



자사주는 회사가 취득한 주식을 의미한다. 자사주 매입만으로도 주주가치 제고효과가 있다. 상법상 취득 이후 일정 기간 매각이 제한(취득결과보고서 제출 후 6개월)되기 때문에 유통주식수가 감소한다. 시가총액은 그대로인데 유통주식수가 줄면 주당 가치가 높아진다.


다만 '매입'은 반쪽자리 주주환원이다. 추후 회사가 재원마련을 위해 시장에 되팔 경우 다시 유통주식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경영승계 목적으로 자사주를 매입해 활용하는 경우도 과거엔 많았다.


'소각'까지 진행해야 진정한 주주환원이다. 유통주식수가 아니라 발행주식수 자체가 줄어든다. 주당가치가 영구적으로 높아진다. 가령 발행주식수가 10주인데 시가총액이 10조인 기업이 있다고 치면 한 주의 가치는 1조원이다. 그런데 9주를 소각하면 1주가치가 10조원이 된다.


자사주 소각이 대표적인 주주환원정책으로 불리는 이유다. 더불어 주주환원정책은 일관성이 있어야 효과가 극대화된다. 미래에도 환원을 할 것이라는 '예측가능성'이 투심으로 이어져 기업가치를 제고하는 선순환을 만들기 때문이다.


한미반도체는 자사주 소각이 올해로 5번째다. 2018년 8월 취득가 기준 361억원 상당을 시작으로 2020년 399억원, 2021년 3월 165억원, 2022년 199억원 어치를 소각했다. 누적 소각액이 926억원이다.


자사주소각은 회사 재원(잉여금)을 소진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그간 국내 상장사들은 소극적이었다. 자본력이 탄탄한 코스피 상위권 회사중에서도 삼성전자와 현대차 정도만 과거부터 꾸준히 소각을 해왔다.


다만 올 초 정부가 코리아디스카운트 문제 해소를 위해 '기업 밸류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최근 소각계획을 발표하는 대기업이 많아졌다. 한미반도체는 중견기업임에도 오래전부터 선진적 환원을 해왔다.


◇ ROE 55%, 삼성전자의 13배…배당도 적극적


적극적 자사주소각 덕분에 한미반도체는 자기자본이익률(ROE)가 글로벌기업에 견줄 정도로 높아져 있다. ROE는 자본총액에서 당기순이익이 차지하는 비중(순이익/자본총액*100)이다. 자본총계는 2년 평균치를 활용한다.


기업이 자기자본을 활용해 얼마나 효율적으로 돈을 벌고 있는지를 나타낸다. 대표적 투자지표 중 하나다. 투자대가 워렌버핏이 최근 3년 평균 ROE가 15% 이상인 기업에 투자하라고 과거 권고하기도 했다.


자사주소각은 ROE를 직접적으로 높이는 수단이다. 자사주 매입은 통상 자본총계를 구성하는 이익잉여금을 재원으로 한다. 소각을 하면 ROE의 분모인 자본총계가 줄어들어 ROE 상승으로 이어진다.


한미반도체는 자사주소각을 시작한 2018년에는 그 해 말 연결기준 ROE가 8.9%였다. 그런데 2021년 말 34.6%로 높아지더니 지난해 말 기준으론 55.5%로 치솟았다. 국내 상장사 2014~2023년 평균 ROE가 8%인 것과 비교하면 굉장히 큰 격차다. 국내 시가총액 1위인 삼성전자도 지난해 말 기준 ROE가 4.15%에 그친다.



내로라하는 해외기업과 견줄 수 있는 수준이다. 해외에선 애플이 자사주소각을 활용한 ROE제고로 가장 유명한데 지난해 말 기준 ROE가 171.9%다. 마이크로소프트는 38.22%. 코카콜라는 30.28%, 월마트는 19.32%다.


한미반도체는 또 다른 주주환원책인 배당에 있어서도 일관성이 있다.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10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배당을 했다. 누적 배당금이 1733억원이다. 가장 최근인 2023년 회계연도 결산배당금(올 3월 지급)은 405억원으로 사상 최대였다. 지난해 연결기준 배당성향은 15.2%다.


한미반도체 관계자는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상황이지만 주주가치 제고를 위해 자사주 소각을 결정했다"며 "인공지능 반도체 시장에서의 한미반도체 미래 가치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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