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시작된 공모주 시장 광풍이 사그라드는 걸까. 무려 반년 만에 수요예측에서 흥행에 실패한 IPO가 나왔다. 에너지플랫폼 기업 그리드위즈다. 경쟁률이 100대 1수준에 그친다. 직전까지 20여건 IPO 경쟁률이 800대 1 내외였던 것과 비교하면 수직낙하다. 이른 바 기관들의 '묻지마 베팅' 열기가 그리드위즈를 계기로 처음으로 멈춰섰다.


그리드위즈는 31일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기관수요예측 결과를 공시했다. 공모가 희망밴드는 3만4000~4만원, 공모액은 476억~560억원이었던 중형딜이었다. 100% 신주모집으로 총 140만주를 공모했는데 이중 75%인 105만주가 기관에 배정됐다.


수요예측에서 총 1억3082만5408주가 신청돼 경쟁률이 124.6대 1에 머물렀다. 이는 올 들어 가장 낮은 수치이자, 평균치와도 격차가 크다. 그리드위즈 전까지 올 들어 총 22건의 수요예측이 있었는데 평균 경쟁률이 876.23대 1이었다. 그리드위즈는 평균치의 7분의 1수준이다.



22건 중에서 경쟁률이 201대 1로 상대적으로 낮은 건이 있었는데 올 사상 최대어(HD현대마린솔루션)였던 탓이었다. HD현대마린솔루션은 공모액이 7422억원에 달해 기관들이 풀베팅을 해도 경쟁률이 낮을 수밖에 없었다. 그리드위즈는 공모액이 500억원대로 빅딜이 아니다.


그리드위즈가 올 들어 처음으로 흥행에 실패한 사례로 평가되는 이유다. 그리드위즈 전까진 기관들이 상초(희망밴드 상단초과)구간에 풀베팅을 하는 '묻지마' 투자를 해왔다. 상장일에 주가가 50%에서 300%까지 뛰는 기현상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리드위즈는 공모주 시장이 과열된 작년 12월 이후 6개월만에 '옥석'이 가려진 상징적 사례가 됐다. 그리드위즈는 기관 신청물량이 직전 흥행딜의 4분의 1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그리드위즈 경쟁률은 바닥권이지만 청약기관 상당수는 여전히 '상초'에 베팅했다. 상초구간 베팅비중이 67.2%로 가장 컸다. 반면 희망밴드 하단(3만4000원)구간도 15.4%로 두 번째로 높았다. 상단(4만원) 구간은 12.7%로 세 번째로 높았다. 하단미만은 2.2%, 미제시는 1.8%였다.



더불어 청약기관 대다수는 확약을 하지 않았다. 청약물량(1억3082만5408주)의 99%(1억2958만5408주)가 미확약이다. 역시 공모주 광풍이 분 이후 일관된 트렌드였던 '단타'를 노린 물량들이다. 다만 상초에 베팅한 기관들은 '비인기 공모주'를 상당수 배정받는 부담을 안게됐다. 직전딜까진 상초구간에 풀베팅을 해도 배정받는 주식이 많지 않았다.



그리드위즈는 경쟁률이 저조한 것을 감안해 공모가는 희망밴드 상단인 4만원으로, 공모액도 560억원으로 확정지었다. 올 들어 공모가를 상초가격으로 정하지 않은 발행사는 HD현대마린솔루션과 그리드위즈 둘 뿐이다. 그런데 HD현대마린솔루션은 수요예측이 흥행했음에도 대기업계열사라 평판을 의식해 자의로 '상단'을 택한 곳이다. 그리드위즈가 사실상 타의로 상초에 실패한 첫 발행사다.


그리드위즈가 옥석가리기 대상이 된 것은 밸류가 지나치게 높았기 때문이다. 작년 영업이익은 16억원에 불과한데 PSR(매출주가비율)을 활용해 평가밸류를 5800억원으로 정했다. 확정 공모가기준 밸류는 3177억원이다.


그리드위즈는 '절약한 전력'을 수집해 파는 수요관리(Demand Response, DR) 기업이다. 전력거래소(KPX)가 전력 감축지시를 내리면 그리드위즈는 기업(빌딩)이나 공장, 대형마트 등 고객사에게 감축이행에 참여하도록 안내한다.


고객사가 감축을 이행하면 그리드위즈는 이를 취합해 KPX에 전달하고, KPX는 그리드위즈에 감축분 만큼의 정산금(감축지시)을 지급한다. 그리고 그리드위즈는 정산금(감축이행)을 다시 고객에게 돌려주는데 계약에 따른 수수료는 제외시킨다. 이 수수료가 그리드위즈의 실질적인 수익원이다.


업계에선 그리드위즈 확정 공모가도 여전히 비싼 수준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 기관투자자는 "확정가(희망밴드 상단)도 이익 창출 능력 대비 매우 고평가 돼 있다고 볼 수 있다"며 "수요관리(DR)시장은 KPX의 편성예산이 중요한데 올해도 작년과 별다르지 않은 상황이라 DR시장에서 급격한 개선세를 기대하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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