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페이는 국내 대표 간편결제플랫폼 중 하나로 평가받는다. 국민 메신저인 카카오톡 이용자라면 간편 송금과 결제로 익숙한 서비스다. 누가 봐도 성장할 것으로 보이는 사업이었고, 상장할 당시(2021년 11월)에 이미 성장성을 입증하고 있었다. 매출액증가율이 2020년엔 101%에 달했고 상장해(2021년)엔 61%였다.


PSR(주가매출비율)이나 EV/SALES와 같은 매출 기반 밸류(기업가치)평가방법에 대해 시장이 인정하는 케이스가 바로 카카오페이 같은 발행사다. 기업의 존재이유는 이윤창출이고, 사실 주가수익비율(PER)이 이에 부응하는 가장 합리적인 밸류평가방법이다. 그런데 카카오페이는 당장엔 적자를 내고 있어 PER로는 밸류산출이 불가했다.


즉 PSR은 독보적 경쟁력이 있는 기업에 한해 예외적으로 허용해주는 평가방법이다. 발행사가 최소한 '성장'은 보여주고 공모에 나서는 것이 일반적이다.


에너지플랫폼 기업 그리드위즈 밸류가 문제 되는 이유가 '성장'에 있다. 작년 영업이익이 16억원에 불과하지만 PSR을 택해 평가밸류를 5800억원대로 구했다. 그런데 지난해에 이어 올 1분기까지 매출이 후퇴했다.


◇ 1분기 매출 13% 감소…경기 영향받는 DR사업


그리드위즈는 이달 16일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올 1분기에 매출 262억원, 영업손실 23억원을 기록했다고 추가 기재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302억원)이 13.3% 줄었다. 이에 영업손실 역시 전년동기(16억원)대비 7억원 가량 확대됐다.



매출 흐름을 최근 수년간으로 확대해서 보면 '둔화'를 넘어 '역성장'을 하는 단계가 됐다. 연간 매출은 2020년 404억원에서 2021년 1122억원, 2022년 1321억원으로 커지더니, 지난해는 1319억원이 됐다. 매출증감율(전년 대비)로 보면 2021년은 177.5%에 달했지만 2022년엔 17.8%로 하락했고, 2023년은 마이너스(-) 0.2%가 됐다. 작년 역성장이 시작됐고 올 1분기(-13.3%) 심화한 모습이다.


더불어 2021년 증가율(177.5%)이 이례적으로 컸던 것도 M&A(인수합병) 효과 덕이었다. 그리드위즈는 2020년 12월 수요관리 기업 아이디알서비스를 인수했는데, 아이디알서비스 매출이 2021년부터 연결실적에 포함됐다. 그리드위즈보다도 외형이 큰 기업이었다. 아이디알서비스 2021년 매출은 684억원으로 그리드위즈 연결매출(1122억원)의 61%를 차지했다.


결과적으로 PSR적용기업의 기본요건인 '고성장 곡선'을 그리드위즈에선 찾아볼 수 없다. 그리드위즈 주력사업인 수요관리(Demand Response, DR) 시장 자체가 둔화한 탓이다. 그리드위즈는 아이디알서비스를 인수하면서 국내 DR 시장 40% 가량을 점유하는 1위 사업자가 됐다. 시장 흐름과 실적이 유사할 수 있는 구조다.


DR은 감축전력을 파는 시장이다. 정부가 2014년 효율적인 전력운용을 위해 개설한 시장이다. 전력거래소(KPX)가 전력 감축지시를 내리면 DR기업이 기업(빌딩)이나 공장, 대형마트 등 고객사에게 감축이행에 참여하도록 안내하고, 고객사가 감축을 이행하면 DR기업이 KPX로부터 정산금(감축지시)을 받는다.


이 정산금이 그리드위즈의 핵심매출이다. 지난해 연결기준 매출(1319억원)의 83.7%(1103억원) DR사업에서 발생했다. 그런데 KPX가 매년 DR기업들에게 지급하는 전체 정산금규모가 최근 정체국면에 있다.


KPX 정산금은 시장개설 초기인 2015년 952억원에서 2019년 2181억원으로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 4년(2015~2019년) 연평균 증가율이 25.1%였다. 하지만 이후론 눈에 띄게 둔화됐다. 코로나19 시기인 2020년 1985억원으로 급감했다가 2022년엔 2428억원으로 반등했지만 지난해 다시 2397억원으로 줄었다. 최근 4년(2019~2023년) 연평균 증가율은 2.8%다.


(자료:전력거래소)


전력이 기본 소비재라 DR시장도 경기에 연동되는 특징이 있다. KPX는 전력피크를 막기 위해 전력 감축지시를 내리는데 경기가 좋지 않으면 기업들도 공장가동을 줄인다. 감축지시가 불경기엔 줄어들고, 정산금 역시 그만큼 감소하게 된다. 지난해는 고금리 지속 여파로 국내 외 경기가 위축됐다.


그리드위즈는 1분기 매출 감소에 대해 "종속회사 아이디알서비스 1분기 DR매출 감소가 주요 원인"이라며 "고객사 공장 가동률이 낮아짐에 따라 DR용량 확보가 어려웠고, 자발적 DR서비스 낙찰이 저조한데 따른 영향"이라고 증권신고서에 기재했다.


◇ 역성장기업 PSR 적용 사례 거의 없어…평균 40~50% 성장


투자자입장에선 그리드위즈가 PSR을 택한 근거(성장)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다. 발행사 뿐 아니라 전방시장(KPX정산금) 자체가 작년 역성장을 한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그간 PSR 등을 택한 발행사들이 보여준 고공성장과는 괴리가 크다. 앞선 주자들은 40~50%대 매출증가율을 보여주고 공모를 했다.


다름 아닌 그리드위즈가 자사 증권신고서에 기재한 통계자료다. 2018년 이후로 PSR과 EV/SALES로 밸류를 매긴 발행사는 총 9개사다. △카페24 △셀리버리 △지노믹트리 △코리아센터 △케이카 △카카오페이 △지니너스 △쏘카 △블루엠텍 등이다.



이들 9개사의 상장연도 매출증가율(전년 대비)은 평균 40%였다. 상장 1년전 매출증가율은 평균 59%, 상장 2년전 평균은 23%다. 9개사의 세 가지(상장연도, 1년전, 2년전) 연도별 매출증가율 평균값은 최종 41.1%다.


9개사 중에서 성장성을 보여주지 못한 곳은 지노믹트리인데, 바이오텍으로 2019년 상장할 당시 이익 뿐 아니라 매출도 거의 발생하지 않았던 발행사다. 바이오텍 특유의 고위험을 내포한 딜이다. 지노믹트리를 제외하면 역성장 기업이 PSR을 택한 것은 지난 6년 동안에 그리드위즈가 처음이다.


그리드위즈는 당장은 역성장 국면에 있지만 미래 전망은 밝다고 설명하고 있다. 틀린 말은 아니다. 탄소중립이라는 글로벌트렌드에 따라 화석연료사용은 갈수록 줄고, 신재생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는 것은 자명해 보인다. 신재생에너지는 생산이 불규칙하기 때문에 '저장'과 '공급' 등 수급조절에 대한 고도화된 솔루션이 요구된다. '전력운용' 노하우가 있는 DR기업이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여건이다.


다만 그럼에도 시장이 급격히 커지지는 않는다. 리서치업체 아르스타(Arsta)는 국내 DR 거래시장이 2021년 2억1000달러 규모에서 2028년 4억5000달러 규모로 연평균 6.77%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봤다. 시장이 완만하게 커질 것으로 봤다. 미래전망도 '고성장'은 아닌 셈이다.


그리드위즈가 논란을 피하려면 IPO를 '성장'을 실현한 시점으로 늦추면 된다. PSR이 아닌 PER로 평가방법을 바꾸는 것도 대안이다. 그리드위즈가 논란이 있는 현 시점에 IPO 강행을 택한 것은 재무적투자자(FI) 영향으로 추정된다. FI가 자금회수를 해야 한다.


FI는 증권신고서 제출일(5월 3일) 기준 지분 33.97%(221만4359주)를 보유하고 있다. 상장 후지분율은 27.86%가 된다. 27.86% 가운데 9.18%(72만8267주)는 상장일에 매도할 수 있다. FI 잔여지분은 보호예수를 걸었는데 대다수 1~2개월로 짧다.


그리드위즈는 마지막 투자유치(프리IPO)인 2020년 12월 전환상환우선주(RCPS) 발행할 당시 평가받은 밸류가 1475억원이었다. 당시는 유동성이 풍부해 기업들 몸값이 치솟던 시기다. 이번 IPO를 위해 산출한 평가밸류는 5884억원으로 3년 새 4배가 됐다.


PER로 평가방법을 바꿀 경우 IPO밸류는 프리IPO 수준으로 낮아진다. 그리드위즈는 미국 대형 전력기기 회사 이튼(EATON)을 피어그룹으로 정했는데 현재 증시에서 받는 PER 멀티플이 42.6배다. 이달 17일 기준 이튼 시가총액(약 179조원)을 지난해 당기순이익(4조2049억원)으로 나눈 수치다.


이튼 멀티플(42.6배)을 그리드위즈 지난해 당기순이익(42억원)으로 곱하면 PER 기준 밸류는 1770억원이 된다. 40배 수준의 높은 멀티플을 적용했음에도 프리IPO 밸류(1475억원)보다 소폭 높아지는데 그친다.


PSR을 택해야 원하는 밸류를 구할 수 있었다. 그리드위즈도 인정하고 있다. 그리드위즈 관계자는 "다른 이익지표들을 적용하기 어려운 상황과 시장환경이 있었다"며 "매출이 가장 진실된 지표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최근 매출 정체는 전력상황 때문인데 환경은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모주주 입장에선 부담스러운 밸류다. 한 기관투자자는 "아이디알서비스 인수 후 DR시장에서 1위사업자가 됐지만 이후 성장성이나 수익성 측면에서 모두 이렇다할 성과를 보여주지 못했다"며 "(매출기반) 밸류 합리화는 어렵다고 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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