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격적인 투자와 솔리다임 M&A(인수합병)로 30조원대로 치솟은 차입금의 대가는 이자비용이다. 올 상반기에만 6700억원대를 기록했고 연간으로는 사상 처음으로 1조원대에 이를 전망이다.


공교롭게도 글로벌 금리가 급격히 오르는 시기 차입금을 10조원 이상 늘린 결과다. 영업적으로도 적자를 내는 국면에 조원대 이자비용까지 가중되는 이중고를 겪게 됐다. 업계에선 업황이 회복된다는 가정 하에 내년 하반기는 돼야 차입 해소가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 EBITDA 86%가 이자로...올 차입 소폭 확대 전망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SK하이닉스는 올 상반기에 발생한 금융비용이 6773억원이다. 올 상반기에만 전년 연간치(5444억원)를 1300억원 가량 상회하는 이자를 내고 있다. 여기서 금융비용은 외화환산손실이나 파생상품평가손실과 같은 회계적 손실을 제외한 실질적 비용만 분류한 수치다.


SK하이닉스는 보유 금융자산도 많지 않아 비용을 크게 억제하지 못한다. 순금융비용(금융비용-금융수익)은 올 상반기 5868억원으로 금융비용보다 900억원가량 적은 수준이다. 순금융비용 역시 올 상반기에만 전년 연간치(4549억원)을 1300억원 가량 상회하고 있다.



미국의 자이언트스텝으로 글로벌 금리가 치솟기 시작한 작년 하반기 이후 공교롭게 거액을 조달한 영향이 컸다. 작년 상반기 말 21조원이었던 총차입금은 올 상반기 말 약 32조원으로 11조원 가량 늘었다.


SK하이닉스(AA0, 안정적)는 저금리시기엔 공모채를 1%대에 발행했던 우량사다. 2021년 4월 223회차 공모채를 3년물은 1.5%에, 5년물은 1.9%에 발행했다. 하지만 고금리로 전환한 올 2월엔 3년물을 3.8%, 5년물은 4.3%에 찍었다. 금리가 2년 만에 두 배 이상 높아졌다.



연간으로는 금융비용이 1조원을 넘을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12년 SK그룹에 편입된 이후 이 같이 천문학적 이자가 발생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현금흐름 상 최소 올해 내로는 차입해소가 불가능한 탓이다. 유사시 되레 차입을 늘려야 할 수 있다.


올 상반기만 보면 SK하이닉스는 사업으로 번 현금(EBITDA) 규모가 이자비용만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크게 줄었다. 이에 운전자본과 반도체업 특성상 필요한 대규모 설비투자(CAPEX)는 빚을 내서 충당하고 있다.


올 상반기 EBITDA가 7851억원으로 같은 기간 순금융비용(5868억원)을 2000억원 상회하는 수준이다. 이자와 법인세, 운전자본을 제한 영업활동현금은 마이너스 6940억원이다. 여기에 5조원대 CAPEX가 더해지면서 잉여현금흐름(FCF, 프리캐시플로우)은 마이너스 6조4545억원이 됐다. FCF가 마이너스란 이야기는 차입이나 자산매각을 통해 부족자금을 메웠다는 의미다.



올 하반기는 더디긴 하지만 D램 중심으로 반도체 가격이 회복되면서 상반기보다는 상황이 나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여전히 지출을 감당할 수준으로 현금창출력이 회복되지는 않을 것으로 본다. 한기평은 최근 보고서에서 연간 FCF가 마이너스 10조원 가량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FCF 적자폭이 올 상반기(-6조4545억원)보다 3조원 가량 늘어난다. 그만큼 차입이 더 이뤄질 수 있다는 의미다.


올 연말 차입규모가 현 수준(약 32조원)으로 유지된다 해도 금융비용은 늘어날 수 있다. 과거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조달한 차입이 차환으로 인해 고금리로 전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올 하반기 금융비용은 상반기(6773억원)와 비슷하거나 더 늘어날 수 있다. 연간 조단위 금융비용이 예상되는 이유다.


(자료:한국기업평가)



◆ 기업어음 1.2조…유사시 자산활용 가능성


업계에서 이자와 함께 주목하는 것은 조원대로 불어난 단기차입인 기업어음(CP)이다. 작년 말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돈맥경화 상황이 벌어지면 현금창출력이 마른 SK하이닉스 입장에선 자산유동화나 매각, 유상증자와 같은 수단을 동원해 급전을 구해 대응해야 한다.


올 차입이 늘면서 만기구조 단기화도 심화했다. 지난해 말 기준 단기성차입금은 7조7041억원 규모로 전체 차입금(24조7917억원)의 31%를 차지했다. 올 상반기말엔 단기성차입금이 10조8609억원으로 전년 말 대비 3조원 가량 늘었고, 비중도 33.1%로 2%포인트 상승했다.



특히 단기성차입금에는 만기가 1일~3개월인 단기CP가 적잖게 포함돼 있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이달 16일 기준 SK하이닉스가 발행한 CP잔액은 1조2000억원이다. 이중 만기가 1~10일인 CP가 2500억원, 1~3개월은 4500억원이다. 3개월 미만(7000억원)이 전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이어 3개월~6개월이 500억원, 6개월~1년미만이 4500억원이다.


CP는 레고랜드 사태와 같은 투심을 급격하게 위축시키는 돌발변수가 발생했을 때 가장 먼저 충격을 받는 시장이다. 만기가 짧아 가장 먼저 자금 회수가 이뤄지고 투자는 사라진다. 발행사 입장에선 차환이 어려워진다. SK하이닉스는 유사 시 영향을 받는 규모가 조원대다.



다만 SK하이닉스는 신용도(AA0, 안정적)가 높은 우량회사로 분류되고 있어 조달옵션이 많은 편이다. 비용이 늘어날 순 있지만 유동성 위험도 거의 없다고 평가받는다. 실제로 반도체장비나 공장을 기초자산으로한 유동화증권 발행이 가능하고 여기에 최후 수단으로 투자자산인 키옥시아(옛 도시바) 지분(약 5조원)을 매각하거나 유동화하는 방안도 있다.


결국 CP 등 단기차입 위주로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이 재무안정성을 과거 수준으로 돌리기 위한 첫 단추가 된다. 신용평가업계가 예상하는 시점은 내년 하반기다. 영업손실 주범인 낸드플래시의 평균판매단가(ASP)나 비대해진 재고가 불황 전 수준으로 돌아갈 것으로 예상되는 시기다.


물론 변수도 있다. 현금흐름에 큰 영향을 주는 CAPEX가 통제된다는 가정이 깔려있다. 지난해 CAEPX가 19조7488억원에 달했지만 올해는 전년의 50%(10조원) 수준으로 축소해 지출을 최소화하고 있다. 다만 CAPEX는 미국의 대중국 견제 등 글로벌정세에 의해 달라질 수 있는 측면이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낸드 업황이 개선되고 과거 대비 줄인 CAPEX계획에 변동이 없다는 가정 하에 내년 하반기부터 차입금 축소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며 "발행사가 수시로 차입 축소에 대한 의지를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