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에코플랜트에 합류한 새 경영진(장동현‧채준식)의 과제는 명료하다. 기존 경영진(박경일‧조성옥)이 '확장'에 주력했다면 이제는 '선택과 집중'을 할 때다. 최상의 기업가치(밸류)를 만들어 내기 위해 '코어(core, 핵심)'를 강화하고 시장에 부각시켜야 한다.


그렇다면 어떤 사업이 코어 후보일까. 내부에서도 외부에서도 이견 없이 꼽는 미래동력은 '폐배터리' 사업이다. '배터리소재→배터리셀→전기차'로 이어지는 밸류체인은 증시에서 가장 핫한 종목들이다. 그리고 폐배터리는 밸류체인의 마지막 단추다. '전기차→폐배터리(소재 재활용)→배터리셀'로 순환하게 된다. 전기차 시장보다 10년 정도 후행할 뿐이다.


SK에코플랜트는 M&A(인수합병) 빅딜로 단번에 시장진입을 노렸는데 짧은 기간에 꽤 가시적 성과를 낸 것으로 파악된다. 세계 최대 전기차 시장인 중국과 미국에 잇달아 폐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다. 배터리셀 글로벌 톱티어들을 고객사로 확보했기에 가능한 행보라는 것이 투자은행(IB)업계 시각이다. 시장 선점을 위한 토대를 갖췄다.


◇ '테스' 빅딜로 패배터리 초단기 진입


SK에코플랜트는 최근 3년새 3조여 원을 들여 환경과 에너지사업을 대폭 강화했다. 기존 솔루션사업(건설) 단일구조에서 M&A를 통해 ▲폐배터리(테스) ▲그린수소(블룸SK퓨얼셀) ▲기업형 폐기물 처리(환경시설관리) ▲해상풍력(SK오션플랜트) 등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했다.


이중에서도 밸류에 가장 도움이 될 만한 사업은 ▲폐배터리 ▲그린수소다. 국가적으로 경쟁력 확보에 나설 만큼 시장 팽창이 확고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특히 폐배터리는 투자자들이 현실에서 체감할 수 있는 '가시성'이 있어 '코어'에 어울린다는 평가를 받는다. 전기차 이용자가 갈수록 늘고 있고, 폐배터리 처리에 대한 제도적 논의도 이뤄지고 있다. 지속적으로 이슈가 돼 투심확보에 용이한 측면이 있다.


폐배터리 시장은 아직 태동기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글로벌 폐배터리 시장 규모는 ▲2030년 70조원 ▲2040년 230조원 ▲2050년 600조원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배터리셀 시장규모가 2020년 약 60조원이었으니 폐배터리 시장이 10년가량 후행한다고 볼 수 있다.


이에 현재는 밸류체인 내 기업들이 서로 기술력을 점검하며 동맹(얼라이언스)을 형성하기 시작한 단계다. 기술력을 점검할 수준의 물량(폐배터리)은 있다. ▲완성차 업체들이 리콜(Recall)로 폐기처분 하는 배터리와 ▲배터리셀 제조과정에서 나오는 불량품 ▲적은 수량이지만 초기 전기차의 수명이 다한 배터리 등이다.


배터리셀 제조사인 LG에너지솔루션은 배터리재활용기업인 미국 라이사이클(Li-cycle)과 중국 화유코발트와 손을 잡았다. 삼성SDI와 SK이노베이션(SK온 모회사)은 국내 재활용기업 성일하이텍과 협력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는 배터리 밸류체인에선 후발주자다. M&A 빅딜을 통해 단기에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하는 것을 노렸다. 2022년 4월 싱가포르 배터리재활용 기업 테스(TES) 지분 100%를 약 1조2000억원을 들여 인수했다.


TES는 본래 전기·전자폐기물(E-Waste)을 재활용하는 기업이다. 노후한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PC 등에서 알류미늄이나 코발트 등 희소금속을 추출해 다시 IT기기 부품사에 팔았다. 이 분야에서 경쟁력이 세계적이었다.


테스는 북미와 유럽 등 선진국을 포함해 전 세계 23개국에 46개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각 사업장은 폐기물을 수거하는 거점이다. 더불어 수거한 폐기물은 싱가포르와 프랑스, 네덜란드, 중국, 호주에 지은 전용공장에서 재활용한다. 지난해 연간매출은 2697억원, 올 3분기까지 매출은 3283억원이다.


(사진:SK에코플랜트)


◇ '기술력‧거점·인허가' 경쟁력, 밸류체인 이미 합류 추정


테스가 구축해 놓은 글로벌 사업구조는 전기차 폐배터리 사업에도 긴요하다. 전기차는 미국과 중국, 헝가리 등에서 집중적으로 생산되지만 소비는 글로벌 각지에서 일어난다. 폐배터리 수거지도 그만큼 늘어나야 한다. 테스는 46개 사업장(수거지)을 이미 갖추고 있다.


특히 수거한 폐배터리를 재활용공장이 있는 나라로 옮길 수 있어야 하는데 바젤협약(Basel Convention)이라는 진입장벽이 있다. 유해폐기물의 국가간 이동과 교역을 금지하는 협약이다. 테스는 교역 인허가권인 바젤퍼밋(Basel Permit)을 30여개 보유하고 있어 경쟁에 앞서 있다.



기술력은 E-Waste 사업으로 검증됐다. 전기차 배터리 재활용도 요구하는 기술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업성 측면에서 원재료 회수율이 중요한데 회사측은 니켈·코발트는 97%, 리튬은 90% 달한다고 설명한다. 회수된 금속 순도는 99.9%인데 실제 배터리 제조에 쓰이는 광물 수준이다.


SK에코플랜트가 거금을 들여 테스를 인수한 이유다. 다만 인수 후 1년 반이 지난 현재까지 어떤 성과를 냈는지가 베일에 가려져있다. 성일하이텍 같은 중견사도 알만한 배터리셀 제조사(삼성SDI·SK온)와 협력하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졌다.


이른 바 SK에코플랜트와 '동맹'을 맺은 배터리셀 고객사가 있는지, 또 해당 고객사가 어떤 지위에 있는지가 관건이다. 배터리를 재활용할 수는 있어도 받아줄 곳이 있어야 사업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SK에코플랜트 측은 이를 한 번도 공개한 적이 없다.


다만 업계에선 SK에코플랜트가 잇따라 주요 시장인 미국과 중국, 유럽 물류거점에 폐배터리 공장을 짓고 있는 것에 주목하고 있다. 이달 12일 중국 장쑤성 옌청시에 폐배터리 전처리가 가능한 1공장을 준공했고, 인근에 전처리 2공장도 내년 말까지 지을 예정이다. 장쑤성은 중국 내수 전기차 1위인 비야디(BYD) 등 전기차와 배터리 제조사 10여곳이 밀집한 곳이다. 후처리 공장도 이미 중국 내 상하이에서 운영하고 있다.


SK에코플랜트가 12일 중국 장쑤성 옌청시 경제기술개발구에서 진행한 배터리 재활용 공장 준공식 전경


또 미국 켄터키주에도 미국 폐배터리 재활용기업 어센드엘리먼츠(Ascend Elements)와 합작해 6580만달러(약 860억원)을 들여 전처리 공장을 짓고 있고, 유럽 최대 항구인 네덜란드에 구축중인 공장도 연내 준공할 예정이다. 2025년까진 유럽 전기차 생산기지인 헝가리에도 재활용시설을 구축한다.


배터리셀 글로벌 톱티어와 사전 교감(동맹)이 없었다면 진행할 수 없는 투자라는 평가다. 업계 관계자는 "비밀유지조항 탓에 공개하지 못하는 것일 뿐 글로벌 톱5에 드는 배터리셀 제조사들과 동맹을 맺은 결과로 본다"고 말했다.


◇ 성일하이텍 멀티플 31배로 상장, EBITDA 중요


SK에코플랜트 폐배터리 사업 지위가 안정적(동맹 확보)이라면 IPO에서 밸류업을 노릴만 하다. 그간 거론된 밸류는 10조원이었는데 일각에선 지나치게 높다는 지적이 있었다. 건설사인 현대엔지니어링이 2022년 1월 공모에 나설 때 제시한 멀티플(EV/EBITDA)는 11.64배였다. 이것도 비싸다는 평가를 받아 공모를 철회했다. 부동산경기가 침체된 현 시점에선 더 낮은 멀티플이 요구된다.


SK에코플랜트가 10조원대 밸류를 받으려면 현 시점에선 멀티플을 23배나 줘야 한다. 밸류를 10조원으로 가정하면 올 3분기말 순차입금(4조5032억원)을 더한 EV는 14조5032원이 된다. 이를 올 연환산 EBITDA(6303억원)로 나누면 EV/EBITDA가 23배로 도출된다. 건설사업만으로는 불가능한 멀티플이다.


반면 폐배터리 사업성을 투자자들에게 인정받으면 달라진다. 폐배터리 업종에 대한 투심은 이미 증시에서 확인됐다. 테스와 비교해 체급이 훨씬 떨어지는 성일하이텍이 조단위 밸류로 평가 받고 있다.


성일하이텍은 2022년 7월에 상장했는데 당시 평가시가총액이 8000억원이었다. EV/EBITDA를 31.6배 적용한 결과다. 현재는 멀티플이 더 높아졌다. 이달 19일 종가 기준 시가총액은 1조3439억원이다. 올 3분기말 기준 순차입금(749억원)을 더한 EV는 1조4188억원이다. 이를 올 연환산 EBITDA(297억원)로 나눈 EV/EBITDA는 47.7배에 달한다.


건설업으로 인한 저평가를 폐배터리로 희석시킬 수 있다. 폐배터리 사업에서 연간 1000억원 수준의 EBITDA만 창출하고 멀티플을 30배 수준만 적용해도 더해지는 EV가 약 3조원이다. 이에 IPO 시점까지 폐배터리 현금창출력을 최대한 높이는 것이 핵심 과제가 될 것이란 평가다. 중국 옌청 공장 등이 순차적으로 가동을 시작하기 때문에 충분히 노려볼 수 있는 성과다.


IB업계 관계자는 "폐배터리는 밸류 측면에서 누가 보더라도 '코어'로 육성해야할 사업"이라며 "작년 테스 인수로 토대를 다졌다면 이젠 스케일업(scale up)을 통해 실적 기여도를 높여야 하는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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