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노그리드는 상장예비심사 승인 무효라는 한국거래소의 사상초유 조치로 기업공개(IPO)가 무산됐다. 문제는 IPO무산 여파가 단순히 성장기회를 놓친 것에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운영자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기업존속이 어려울 수 있다.


이노그리드는 적자를 감수하고 외형확대에 주력했던 곳이다. 적자기업이 택하는 기술성장기업특례로 IPO에 도전했다. 부족한 운영자금은 재무적투자자(FI)에게 지분을 팔거나 은행 대출로 충당해왔다.


그리고 IPO에 나선 시기는 자본잠식에 처하고 보유자금도 상당수 소진했을 때였다. IPO로 유동성 숨통을 트여야 할 타이밍이었지만 불발됐다.


◇ 영업적자 속 유동비율 70%


이노그리드는 올 1분기 말 기준 유동비율이 70.1%다. 유동비율은 1년안에 현금화시킬 수 있는 유동자산을 1년안에 갚아야 할 유동부채로 나눈 값을 백분율화한 수치다. 200%는 돼야 유동성이 안정적이라고 보는데 3분의 1수준에 그치고 있다. 즉 빚의 절대규모가 자산보다 크다.



흑자기업이라면 낮은 유동비율이 문제되지 않을 수 있지만 이노그리드는 적자기업이다. 지난해 매출이 유의미하게 커졌음에도 적자를 지속하고 있다. 지난해 매출 328억원에 영업손실 1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에 비해 매출(141억원)은 132% 늘었지만 영업손실(46억원)은 지속했다.


올해는 매출이 다시 둔화하며 손실도 확대되고 있다. 올 1분기에 매출 40억원에 영업손실 22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에 비해 매출(63억원)은 35.1% 줄고, 영업손실(19억원)은 15% 증가했다.



즉 자력으로 빚을 갚는데 필요한 현금을 쌓지 못하고 있다. 실제 영업활동현금흐름이 3년전부터 음수다. 2022년 마이너스(-) 10억원, 2023년 -21억원, 올 1분기에는 -66억원이다. 영업활동현금흐름은 EBITDA(상각전영업이익)에서 이자와 법인세, 운전자본 등을 뺀 수치다. 영업을 하면서 벌고 쓰며 남긴 최종 현금이라고 보면 된다. 마이너스는 현금을 쓰면서 영업을 했다는 의미다.


이에 그간 필요한 운영자금도 외부서 조달했다. 우선 2022년 중에 51억원 규모 유상증자를 했다. 46억원 어치는 상환전환우선주(RCPS)로, 5억원어치는 보통주로 신주를 발행해 매각했다. 2022년 말 기준 유동비율이 100.5%까지 올랐는데 현금유입으로 유동자산이 늘어난 영향이었다.


이어 2022년 말 15억원이던 단기차입 규모를 2023년 말에는 50억원으로 확대해 올 1분기말까지 유지하고 있다. 기업은행(15억원)과 신한은행(35억원)으로부터 빌리고 있고 이자율은 각각 5.9%, 4.9% 수준이다.


◇ 현금성자산 25억원, 4~5월도 14억 영업손실


결과적으로 유동성 리스크에 노출된 상황이다. 빚(유동부채)이 자산(유동자산)보다 더 큰데 영업으로 현금을 쌓지 못하고 있다.


당장 운영자금으로 쓸 돈도 부족해진 것으로 추정된다. 올 1분기말 기준으로 현금성자산이 25억원에 그치고 있다. 유상증자와 단기차입으로 현금성자산은 2023년 말 89억원까지 늘었지만 올 1분기 영업으로 유난히 많은 현금을 지출하면서 잔고가 크게 줄게 됐다.


게다가 올 4~5월에도 지속 적자를 낸 것이 증권신고서 정정을 통해 추가로 공개됐다. 4월 영업손실은 9억원, 5월은 6억원으로 1분기 이후 2개월치 영업손실 15억원이 더해졌다. 6월 현재 현금성자산은 올 1분기말(25억원)보다 더 줄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하반기에 극적으로 흑자를 내지 못한다면, 운영자금과 단기차입(50억원) 상환에 대응할 현금을 다시 외부에서 마련해야 할 상황이다. 은행권 대출은 쉽지 않아 보인다. 영업손실 지속으로 재무상태가 크게 훼손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말 기준 부채총계는 206억원, 자본총계는 14억원으로 부채비율이 1390.7%였다. 그해 RCPS가 보통주로 전환되면서 그나마 전년말(9012%)보다는 크게 낮아졌다. 하지만 올 1분기말에는 자본총계가 마이너스 5억원, 부채총계가 143억원으로 부채비율이 마이너스 2567.8%가 됐다.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것인데, 은행 대출이 불가한 조건이다.


남은 방법은 새로운 FI를 찾거나 구주주에게 다시 손을 벌리는 것이다. 다만 이번 IPO 무산이 원금회수에 대한 불확실성을 드러낸 것이기 때문에 새 FI를 찾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결국 구주주에게 존속이 달렸다는 평가다.


올 1분기말 기준 최대주주는 김명진 대표로 지분 15.31%를 보유하고 있다. 최대주주측 전체 지분율은 자사주(5.2%) 등을 포함해 23.23%다. 주요 FI는 KAI-EVO클라우드 신기술투자조합으로 11.31%를 보유한 2대주주다. 이어 오픈워터Pre-IPO 투자조합10호가 4.77%, 우신벤처투자 2.27%, 한국투자증권 2.07%, 오픈워터엔젤스투자조합2호 0.83% 등이 보유하고 있다. 1% 이상 개인주주도 16곳이나 되는데 전체 지분율은 23.95%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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