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X인터내셔널 일부 공모채 기한이익상실(EOD) 원인사유에 대해 발행사와 사채관리회사(한국증권금융)가 다른 입장을 보여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사채권자들이 조기상환을 요청할 경우 법적 분쟁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다.


사채관리회사는 LX인터내셔널 소속이 LG그룹에서 LX그룹으로 바뀐 것이 공모채에 설정된 '지배구조 변경제한' 계약을 위반한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대외 신인도가 변할 수 있는 이벤트인 만큼 투자자보호가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발행사는 계약문구에 기반해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계약서는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이하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될 경우를 위반사항이라고 적시하고 있다. 발행사는 계열분리 이후에도 대기업집단(LX그룹) 지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에 위반한 것이 없다는 취지다.


◆ 사채관리회사 "그룹 간판 변화, 신인도에 영향"


LX그룹은 LG그룹에서 계열분리로 떨어져 나온 곳이다. '지배구조 변경'이라는 단어적 의미만으로 볼 때 지배구조가 바뀐 것은 맞다. 2021년 5월 LG그룹 지주사 ㈜LG에서 인적분할로 LX홀딩스가 설립됐다. LX인터내셔널(구 LG상사)은 최대주주가 ㈜LG에서 LX홀딩스로 바뀌었다. 그리고 2022년 6월 공정거래위원회가 LX그룹을 LG그룹에서 제외하면서 계열분리가 공식적으로 마무리됐다. 더불어 LX그룹은 공정위에 의해 올 5월 새롭게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이 같은 이벤트에 대해 공모채 이해 당사자들은 각기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 사채권자 권리를 대리하는 한국증권금융은 지난달 중순 께 LX인터내셔널 120-2회차 공모채에 EOD원인사유가 발생했다고 사채권자들에게 통보했다. 120-2회차는 LG그룹 소속이던 2020년 5월 500억원(이자율 2.071%) 규모로 발행한 건이다. 만기가 2025년 5월까지로 5년물이다.


공모채 발행 당시 맺은 사채관리계약 '제2-5조의 2' 조항에 근거한다. 지배구조 변경사유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발행사가 공정거래법에서 정한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지배구조 변경사유'다. 그리고 계약체결일 현재 발행사가 속한 대기업집단은 LG그룹이라고 기재돼 있다.



즉 사채관리회사는 '대기업집단 제외' 문구를 'LG그룹에서 제외되는 경우'로 해석했다. 통상적으로 공모채에 '지배구조 변경제한' 요건을 두는 것은 투자자를 보호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것에 기반 한 해석이다. '주인'이 바뀌면 상환여력이 달라지고 이는 채권가격(이자율)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채권자에게 조기상환에 대한 권리를 부여해야 한다는 논리다.


한국증권금융 관계자는 "당사 법무팀과 법무법인의 자문을 구한 결과"라며 "사채권자의 권익을 보호해야하는 사채관리회사로서 EOD원인사유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 발행사 "대기업집단 유지, 위반 아냐"…신평사 "상환여력 변화는 맞아"


그런데 이에 대해 LX인터내셔널은 적극적으로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달 공시한 2분기 사업보고서에 명시적으로 기재하고 있다. 120-2회차 공모채 '지배구조 변경제한' 충족여부에 대해 '준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는 앞선 '제2-5조의 2' 계약문구에 있다. LG그룹에서 제외됐을 뿐 LX그룹으로 신규 대기업집단이 됐으니 '대기업집단에서 제외'된 상황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LX인터내셔널은 보고서에 "관련계약의 문언과 취지를 고려했을 때 계약상 지배구조 변경으로 보기 어렵다는 법무법인의 의견과 신규 대기업집단 지정을 고려해 '준수'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주인이 바뀐 것은 맞지만 '대기업 집단'으로 다시 지정될 수준의 대외 신인도를 갖췄으니 투자자보호 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라는 취지로 해석된다.


업계 관계자는 "LX인터내셔널은 사모펀드(PEF)로의 매각과 같이 대외 신인도가 크게 달라지는 '지배구조 변경' 케이스와는 다르다는 점을 적극 내세우고 있다"며 "LX인터내셔널이 LX소속으로 바뀐 이후에도 신용등급(AA-, 안정적)을 유지했고, LG소속일 때보다 우수한 실적을 내고 있다는 것을 근거로 한다"고 말했다.


신용평가업계 의견은 어떨까. 사채관리회사 논리에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 신평사들은 대기업집단 계열사 신용평가를 할 때 그룹전체의 재무여력을 반영한다. 부모가 부자일 때 자녀들이 풍족한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보는 것과 똑같다.



LG그룹은 재계 서열 4위 그룹이다. 지난해 매출은 140조원, 자산은 171조원에 이른다. 계열사 수는 올 5월 기준 63개사다. LX그룹은 서열 44위로 지난해 매출이 약 16조원, 자산은 약 11조원이다. 외형에서 LG그룹의 10분의 1 수준이다. 계열사 수는 15개사다. 체급에 확연한 차이가 있다.


한 신용평가사 관계자는 "대기업집단 유지만으로 상환여력이 전과 동일하다고 볼 수는 없다"며 "주주가 바뀐 발행사에 대한 신용평가를 할 때 모회사의 지원여력을 따져서 반영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다만 LX인터내셔널은 우량회사라 LG그룹 소속 일 때도 계열지원 효과를 받지 않았고, 그 결과 LX소속일 때도 전과 같은 신용등급이 유지됐다"며 "사채관리계약에 대한 조항은 신평사가 판단할 영역은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관련기사